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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여행기가 그림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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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여행기가 그림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는 일은 그 사람의 결을 들여다보는 일과 닮아 있다고 합니다. 낯선 곳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떤 풍경을 마음에 담았는지를 따라가다보면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단면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겠죠.

여책저책은 시인 이병률이 파리에 머물며 느끼고 본 기억과 장소를 글과 그림으로 만납니다. 또 전국 100여곳의 산사를 발로 누비며 탐색한 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펜 그림의 기록도 살펴봅니다.

좋아서 그래

이병률·최산호 | 달 출판사

이름만으로 브랜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시인 이병률도 그렇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으로 국내 ‘여행 에세이’ 장르를 정립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다. 최근 그가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3년만에 산문집 ‘좋아서 그래’를 선보였다. ‘여행그림책’이라는 새로운 도전이다.

책은 예술과 사랑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저자가 발견한 장면들이 다채로운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파리는 저자에게 특별한 곳 중 하나다. 지금의 ‘시인 이병률’이 탄생한 소식을 바로 그곳에서 들었다. 저자는 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 ‘그날엔’을 출품했고, 파리에서 당선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등단 후 시집 한 권 내지 못해 막막해하던 시절을 보내던 저자는 또다시 파리로 향했다. 그렇게 돌아온 파리의 길목에서 시인은 이 도시가 그에게 사랑이었음을 고백한다. 저자에게 파리는 사랑을 경유하여 사랑으로 가는 사람들, 평균을 거부하는 사람들, 모두가 반짝이라도 알려지길 원하는 요즘 세상에 오래 익혀 멀리 뻗으려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다가왔다.

저자는 그들을 두고 “참 묘하지”라 말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그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결국 저자는 오늘도 그곳으로 “돌아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책 제목처럼 그곳이 좋아서, 그 사람들이 좋아서, 바로 “좋아서 그래” 때문이다.

책은 수많은 도시를 걸어온 저자가 파리의 길목과 사람들, 카페와 예술가들 그리고 그곳의 공기와 시간을 기록한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바라보며 얻은 시선은 파리의 풍경을 새롭게 비춘다.

‘사랑’과 ‘예술’은 파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이 도시는 어쩌다 사랑과 예술의 도시가 됐을까. 이곳의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과 예술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걸까. 저자는 관광지의 화려함이 아닌, 오래된 건물과 그 위에 남은 낡고 귀한 잔상들 속에서 이유를 찾아나선다.

이번 책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은 그림에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산호가 형형색색의 파리를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표현했다. 바라볼수록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의 그림은 시인의 글과 만나 독자들을 순식간에 파리로 이동시킬 것이다.

주말엔 산사

윤설희 | 휴머니스트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자 윤설희는 자신을 글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래픽 디자인 자체가 제품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쉽고, 인상 깊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일이듯 글도 마찬가지로 주제와 독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하는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말이다.

책 ‘주말엔 산사’는 저자가 2019년부터 5년 동안 탐방한 전국 산사 100여 곳 중 가장 각별했던 산사 7곳의 이야기를 감각적인 펜 그림으로 담았다. 저자는 한국 고건축과 ‘나만의 공간’을 탐구하려 인상 깊은 산사는 여러 번 방문해 더 깊이 들여다봤고, 외국의 산사도 방문해 한국 건축만의 정체성을 직접 확인했다. 그가 이렇게 공간 탐구에 몰두한 까닭은 도심의 작고 네모난 공간에서 벗어나 나만의 집을 짓고 싶어서다.

저자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비슷한 생각이라면서 전국의 산사를 꼼꼼히 걸으며 그림으로 옮겼다.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펜 그림은 아름다운 수묵화를 연상시키며 우리의 시선을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세밀한 선과 점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일주문을 넘어 산사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공간의 다양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부터 CNN 선정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 중 하나인 경북 영주의 부석사, 도심 한가운데의 산사인 서울의 봉은사까지 다양하다.

긴 계단을 올라야 배흘림기둥에 기대서 누릴 수 있는 부석사의 장엄한 소백산맥 풍경, 대자연과 토속신앙 등을 조화롭게 수용한 금산사의 유연함, 투박하고 완성도는 낮을지라도 간절함이 묻어나는 양식과 다양성으로 고유함을 드러내는 운주사의 천불 천탑 등 저자는 각 산사에서 마주한 건축의 깊이와 선문답이 되묻는 삶의 본질적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개성 있는 그림과 재능 있는 디자이너만의 색다른 시각으로 쉽고 친절하게 풀어낸 산사 7곳의 이야기는 마치 함께 산책하며 산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마음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인상을 준다. 책은 도심의 평일에 지친 우리에게 고요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더불어 주말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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