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사라진 사이판 봄 여행
비 와도 투명한 바닷속 탐험
빗속에서 더욱 선명한 숲속

흐린 사이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휴양지의 8할은 날씨’라고 했던가. 연중 내내 맑은 날씨로 유명한 사이판에 해가 사라졌다. 야속하게도 머무는 4일 내내 비가 왔다. 비가 그친 순간에도 해는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스스로를 ‘날씨 요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비가 와도 여행은 계속돼야 한다. 비 오는 휴양지는 실패가 아니다. 여행지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다.
비에 젖지 않는 바닷속으로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흐린 해변의 풍경이 아쉽다면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면 된다. 그 대표적인 곳이 그로토다. 다이빙 성지로 알려진 그로토는 거대한 석회암 동굴로, 수면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빛으로 유명하다. 동굴의 구멍 사이로 들어온 빛이 깊고 선명한 파란색을 만든다. 이 빛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동굴 내부가 바깥보다 어둡기 때문에 흐린 날에도 신비로운 색을 볼 수 있다.

그로토/사진=마리아나관광청
그래서 비가 오더라도 바람이나 파도가 심하지 않다면 평소처럼 문제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실제로 구름에 해가 가려진 날 방문했는데 물속은 빛나고 있었다. 그로토 투어를 예약하면 호텔 픽드랍, 구명조끼·스노클링 장비 대여, 현지 가이드, 수중 사진 촬영까지 포함된다. 다만 자연 보호를 위해 선크림이나 화장품 사용은 제한한다.

마나가하섬. 흐린 날씨에도 바다는 푸른빛을 띤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마나가하섬으로 향하는 배 역시 풍랑주의보만 없다면 비가 와도 정상 운항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 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흐린 날에도 에메랄드빛을 띤다. 이 색은 강한 햇살이 아니라 얕은 수심과 높은 투명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속에 들어가면 시야는 충분히 확보된다. 마나가하섬은 수심이 얕아 멀리 나가지 않아도 형형색색의 열대어를 볼 수 있다. 섬 내에서 구명조끼와 스노클을 대여할 수 있어 가이드 없이도 즐길 수 있다. 비에 젖지 않는 물속에서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된다.
비가 올 때만 보이는 것들

흐린 날의 사이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비가 오면 숲은 더욱 진해진다. 젖은 나무와 흙에서 올라오는 짙은 향이 감각을 깨운다. 이런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사이판 동부다. 리조트와 평탄한 해변이 이어지는 서부와 달리 동부는 가파른 지형과 거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타포차우산을 중심으로 정글과 숲, 절벽이 이어진다.
먼저 사이판에서 가장 높은 산인 타포차우산은 정상으로 향하는 길 자체가 관광이다. 야자수와 활엽수가 무성해 마치 초록색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 든다. 비가 고여 만들어진 진흙탕을 밟고 지나가는 것도 짜릿하다.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섬 전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산타루데스 성당의 성모마리아 상/사진=마리아나관광청 홈페이지
산 아래 숲속 깊숙이 자리한 산타루데스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근방만 폭격을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현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제프리스 비치에서는 악어 형상의 절벽 바위를 볼 수 있다. 동부 지역은 길이 거칠기 때문에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투어로 이용하는 편이 좋다.

사이판에서 만난 작은 무지개/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비가 올 때만 만날 수 있는 장면도 있다. 바로 무지개다. 열대 해양성 기후를 가진 사이판에서는 스콜이 내리다가도 금세 해가 떠오른다. 이 때문에 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다. 게다가 맑은 대기 덕분에 색이 유독 선명하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어 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쌍무지개를 마주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흐린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단번에 뒤집는 순간이다.
비 오는 날 호캉스의 매력

켄싱턴호텔 사이판은 전 객실이 오션뷰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사이판에서 제대로 ‘호캉스’를 즐기고 싶다면 켄싱턴호텔 사이판만 한 곳이 없다. 전 객실 오션뷰에 프라이빗 비치, 워터파크, 비 오는 날에도 머물기 좋은 실내 부대시설까지 갖췄다. 특히 최근에는 호텔 객실 일부를 마사지룸으로 개조한 전용 공간도 새롭게 운영 중이다. 호텔 안에만 있어도 하루가 부족할 정도다.

사이판 최대의 워터파크가 있는 PIC 사이판(좌)과 골프장이 있는 코럴 오션 리조트 사이판(우)/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곳에서는 비 오는 날 진가가 또렷해지는 호캉스를 세 군데에서 즐길 수 있다. ‘사이판 플렉스’ 이용객이라면 켄싱턴호텔 사이판을 비롯해 PIC 사이판, 코럴 오션 리조트 사이판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매 끼니 다른 호텔 레스토랑과 부대시설을 경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 호텔은 무료 셔틀버스로 이동 가능하다.

‘사이판 플렉스’ 여권과 ‘사이판 버킷리스트 투어’ 사용권/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마사지를 포함해 그로토, 마나가하섬, 동부 정글 투어 등 사이판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액티비티는 ‘사이판 버킷리스트 투어’로 이용 가능하다. 이용객은 숙박 일수에 따라 원하는 투어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관계자는 “해당 투어는 애초 3월 말까지 예정돼 있었는데 고객 만족도가 높아 10월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
귀국일이 되니 기가 막히게 날이 갠다. 놀랍진 않다. 공항 가는 길이 가장 맑은 것까지 ‘날씨 요괴‘의 덕목이다. 흐려서 오히려 더 선명했던 사이판을 뒤로하고 귀국행 비행기가 푸른 상공을 날아오른다.
사이판=김지은 여행+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