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서툴고 불편해야 여행할 맛 난다는 이들의 이탈리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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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서툴고 불편해야 여행할 맛 난다는 이들의 이탈리아 여행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이란 단언코 없습니다. 오히려 서툴거나 불편한 여행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런 어려운 과정이 있기에 우리가 여행을 추억으로 남겨두는지 모릅니다.

여책저책이 만난 두 책은 ‘불편함을 밀어내지 않고 끌어안는 여행’을 전합니다. 작가의 ‘나의 아날로그식 이탈리아 여행기’는 종이 지도와 대중교통으로 헤매며 걷는 70대 부부의 느린 여행을 담았습니다.
신양란 작가의 책 ‘뻔뻔한 로마’는 소매치기와 혼잡함 같은 로마의 단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너머의 역사와 매력을 보여줍니다.
나의 아날로그식 이탈리아 여행기
조천홍 ㅣ 미다스북스

기차가 천천히 역으로 들어온다. 낯선 마을의 버스 정류장 앞에서 종이 지도를 펼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낯선 곳을 찾았을 때 요즘 여행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장면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오래된 얼굴인지도 모른다.
조천홍 작가의 책 ‘나의 아날로그식 이탈리아 여행기’는 옛적 여행법을 끄집어냈다. 구글 지도 대신 종이 지도를 들고, 자동차 대신 기차와 버스를 타고, 빠르게 명소를 소비하는 대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시칠리아에서 알프스 산골 마을까지 이탈리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향해 여정을 이어갔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분명 상당히 고됐을 이 여행길의 주인공이 70대 부부라는 점이다. 여기에 이탈리아를 얼마나 많이 여행했느냐가 아닌 어떤 속도로 여행했느냐에 주목한 것이다.
현재의 여행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짧은 영상으로 여행지의 핵심을 미리 보고, 검색을 통해 가장 유명한 맛집과 명소를 골라낸다. 지도 앱은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찾아주고, 정해진 일정 안에서 최대한 많은 곳을 둘러보는 것이 여행의 효율처럼 여겨진다.
저자는 그 반대편에서 여행을 이야기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나는 게 부지기수다. 실제 책 속 여정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잘못 탄 버스 때문에 당황하고, 낯선 길에서 헤매기도 한다. 때로는 조금 수상해 보이는 현지인의 차를 얻어 타는 아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장면은 추억으로 남는다.

저자는 바로 그 불편함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완벽하게 계획된 여행에서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우연과 서툶이 여행자에게 뜻밖의 경험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책은 로마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를 지나 중부와 북서부, 그리고 북부 알프스까지 이어진다.
로마에서는 보르게세 미술관과 카피톨리노 언덕,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과 나보나 광장 등을 만난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말피 해안과 카프리, 마테라와 알베로벨로, 베수비오 화산과 나폴리가 기다린다.
시칠리아에서는 메시나와 카타니아, 타오르미나를 거쳐 에트나 화산에 닿고, 시라쿠사와 모디카, 노토, 아그리젠토, 팔레르모를 지나 몬레알레와 에리체, 세제스타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리파리와 스트롬볼리, 불카노 같은 섬도 여정에 들어온다.
남쪽의 강렬한 햇살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지나 여행은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 페루자와 아시시, 산지미냐노와 시에나를 거쳐 토리노에 닿고, 마침내 아오스타와 브뢰이-체르비니아, 샹폴뤽, 안타뇨드 등 알프스 산골 마을로 이어진다.
밀라노와 베로나를 지나 도비아코와 트레 치메, 세체다, 알페 디 시우시, 산 칸디도, 피스칼리나 계곡에 이르면 이탈리아의 풍경은 또 한 번 완전히 달라진다. 지중해의 뜨거운 바람따라 알프스의 서늘한 공기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한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표정을 가진 이탈리아라는 점을 천천히 보여준다.

저자는 아날로그 여행을 오래된 LP 음반에 비유한다. 디지털 음원처럼 빠르고 편리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바늘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따뜻한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여행도 그렇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하고, 조금 서툴러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것은 여행지의 소리이기도 하고, 그곳에서 걷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책은 특히 70대 부부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남쪽 끝에서 북쪽 알프스까지 여행했다는 사실에 더 특별하다. 여행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고, 늦게 떠난 여행이라고 해서 늦은 여행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시간이 쌓인 뒤에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
젊었을 때라면 빨리 지나쳤을 골목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유명 관광지보다 작은 마을의 조용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서두르지 않기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아날로그 여행은 단순히 종이 지도를 사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법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행을 조금 천천히 바라보는 마음을 기억하자는 것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편리함을 포기하라는 이야기 또한 아니다. 편리함 때문에 여행에서 우연과 여백까지 포기하지는 말자는 뜻을 담았다. 길을 잃어도 괜찮고 계획이 틀어져도 괜찮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 순간에는 당황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 역시 나만의 여행 이야기가 될테니 말이다.
뻔뻔한 로마
신양란 지음·오형권 사진 ㅣ 북핀

로마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간이 뒤섞인다. 눈앞에는 자동차와 관광객이 오가는데 발밑에는 2000년 전 사람들이 걸었던 길이 놓여 있고 낡은 건물 사이로 고대 유적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도시가 로마다.
그런데 로마는 참 뻔뻔한(?) 도시다. 일단 소매치기가 많다. 거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교통질서는 혼잡하고 담배 연기가 불쑥 코끝을 찌르기도 한다. 노숙인과 구걸하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도 적지 않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서는 송곳 하나 꽂을 틈도 없을 만큼 북적댄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로마로 몰려든다.
신양란이 글을 쓰고 오형권이 사진을 찍은 책 ‘뻔뻔한 로마’는 바로 그 묘한 매력에서 출발한다. 제목부터 로마를 무작정 치켜세우지 않는다. 오만가지 단점을 가진 도시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단점을 모조리 덮어버릴 만큼 풍성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독자도 로마의 단점에 투덜거리다가 결국에는 그 도시를 걷고 싶어진다.

책은 크게 두 갈래의 여정으로 로마를 안내한다. 첫 번째 여정은 고대 로마의 심장부다. 콜로세움에서 출발해 포로 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 황제들의 포룸을 지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과 카피톨리니 언덕까지 이어진다.
로마를 처음 찾는 여행자라면 콜로세움부터 떠올릴 것이다. 영화와 사진에서 수없이 봤던 거대한 원형경기장이다.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입구부터 만만치 않다. 예매한 표가 있어도 보안 검색과 입장권, 신분증 확인 등을 거쳐야 하고,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줄을 서야 한다.
콜로세움의 매력은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을 보는 데 있지 않다. 저자는 이곳에서 한때 로마 시민들이 검투 경기를 비롯한 각종 오락을 즐겼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돌과 벽으로 남은 유적 뒤편에 당시 사람들의 삶을 겹쳐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로마의 유적은 더 이상 ‘오래된 돌덩이’가 아니다. 특히 포로 로마노에 이르면 역사적 상상력은 더욱 필요해진다. 지금의 포로 로마노에는 깨진 돌조각과 맥락 없이 놓인 주춧돌, 부서진 기둥들이 남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별것 없는데?’라는 실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포로 로마노야말로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유적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사연을 알고 나면 이곳이 왜 고대 로마의 심장이었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베스파시아누스 신전 터를 바라보며 저자는 로마의 흥망성쇠를 떠올린다. 한때 거대한 제국의 권위를 상징했던 건축물이 무너지고 흙 속에 묻혔다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과정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장면이다.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로마의 출발점을 만나고 황제들의 포룸에서는 제국을 통치했던 황제들의 흔적을 살핀다. 베네치아 광장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거쳐 카피톨리니 언덕에 이르면 고대 로마의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여정은 조금 다른 로마다. 출발점은 포폴로 광장이다. 과거 유럽 귀족 자제들이 유럽 각지를 돌며 견문을 넓혔던 ‘그랜드 투어’의 종착지였던 곳이다. 여기에서 시작해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 판테온, 나보나 광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책은 유명 관광지를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왜 이곳이 그 자리에 있고,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 하나씩 설명한다. 그래서 독자는 관광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간 여행자’가 된다.
특히 트레비 분수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트레비 분수는 언제나 여행자들로 붐빈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 너무 많아 서로 부딪히는 일도 흔하다. 심지어 상대방과 부딪힌 뒤 자신이 소매치기로 의심받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진다.
그럼에도 분수 앞에 서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저자는 트레비 분수를 마주한 순간 절로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왔다고 말한다. 수많은 로마의 분수들이 있지만 왜 사람들이 유독 이곳으로 몰려드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맑은 물이 쏟아지고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떠드는 소리마저 잠시 잊게 할 만큼 강렬하다.
이 책의 매력은 균형감에 있다.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될 불편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단점 때문에 로마를 포기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쓰레기를 피해 걷고, 복잡한 인파에 치이면서도 고개를 들면 그곳에 콜로세움이 있고, 발걸음을 조금 옮기면 포로 로마노가 나타난다. 골목 하나를 돌아서면 판테온이 모습을 드러내고, 또 다른 길 끝에서는 트레비 분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책인 셈이다.

저자는 국어교사로 인생 전반전을 보낸 뒤 교단을 떠나 여행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세상을 떠돌며 알게 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한다. 사진을 맡은 오형권 역시 낯선 세상을 만나는 설렘과 피사체 앞에서 순간을 기다리는 긴장감을 사랑하는 여행자다.
두 사람이 바라본 로마는 그래서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유명한 명소를 빠르게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여행보다 한 장소에 머물며 그곳에 쌓인 시간을 읽어내는 여행에 가깝다.
로마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다.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과 황제들의 포룸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 스페인 계단과 트레비 분수, 판테온과 나보나 광장에서도 사진 한 장 남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도시의 불편함에 너무 화내지 말자. 또 로마를 여행할 때는 조금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보자. 길이 복잡해도, 사람이 많아도, 조금 불편해도 괜찮다. 고개를 들어 눈앞의 유적을 바라보면 된다.
그 순간 알게 될 것이다. 로마가 왜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을 이 도시로 불러들였는지 말이다. 그리고 혹시 이 책을 읽고 로마 여행을 떠났다가 여행 중독에 빠진다면 저자의 말처럼 그 책임을 책에 물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로마가 유죄일 따름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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