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모든 여행이 던진 질문의 답은 결국 현장에 있다고 믿는 이의 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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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모든 여행이 던진 질문의 답은
결국 현장에 있다고 믿는 이의 여행법
모든 일에 대리만족은 답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실제 가보고 겪은 뒤 그 느낌이 설사 별로라고 하더라도 대리만족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만큼 실경험은 중요합니다. 여책저책은 현장에 죽고 사는 언론인의 여행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봄 맞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 사진 = 언스플래쉬
책 ‘일본을 걷는 이유’의 저자 임병식은 2년에 걸쳐 일본 남단에서 북단까지 걸으며 일본의 속을 들여다봅니다. 또 다른 책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는 전 세계 48개 도시를 누비며 지나간 삶을 다시 살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두 책은 여행을 단순한 풍경 소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역사와 예술의 흔적을 따라 내 안의 정체성까지 연결하는 방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풀지 못한 해답을 찾기도 하고, 오히려 물음표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답을 향한 계획을 세우게 합니다.
일본을 걷는 이유
임병식 | 디오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해외 관광객 중 1위는 한국인이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한국인이 945만여 명으로 2위 중국인 909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전체 방일 외국인 5명 중 1명이 한국인일 정도로 일본을 향한 관심이 높았다.
여행으로 일본은 사랑을 받지만 희한하게 그 외의 분야에서는 대부분 경쟁구도로 대한다. 스포츠나 문화, 경제 심지어 가위 바위 보도 일본사람에게는 이겨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제대로다.
언론인 출신 임병식 작가는 ‘우리는 과연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하나, 둘씩 가지다 마침내 일본 열도의 남단 이부스키에서 북단 왓카나이까지 이르는 2600㎞를 직접 발로 누비기로 결심했다. 2년여에 걸친 장대한 여정을 저자는 책 ‘일본을 걷는 이유’에 실었다.
일본 나고야 성 / 사진 = 언스플래쉬
저자는 화려한 관광지 대신 역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과거사 현장을 직접 대면했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전쟁범죄에 침묵하는 일본의 민낯도 확인했다. 하지만 가해 행위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헌신하는 또 다른 일본의 얼굴도 동시에 마주했다.
이 책은 단순히 일본을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을 따라 일본의 여러 얼굴을 소개한다.
봄에는 후쿠오카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시인 윤동주를 떠올린다. 여름에는 전쟁의 광기가 남아 있는 남쪽 마을을 걷는다. 가을에는 옛날 우리나라 사신들이 평화를 위해 건너갔던 길을 따라간다. 추운 겨울에는 강제 노동의 아픔이 서린 홋카이도에서 과거를 반성하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을 만난다.
일본 히로시마 원폭기념관 / 사진 = 언스플래쉬
저자는 군국주의 일본과 양심적인 일본인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책임은 준엄하게 묻되 그것이 시민 개개인을 향한 혐오로 변질되는 것을 조심하자고 말한다.
책에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많다. 안중근 의사를 감옥에서 지키던 일본인 헌병이 그의 훌륭한 인품에 반해 평생 그를 존경하며 사과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또 일본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대신 사과하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한국인을 위해 유골을 찾는 일본 사람들도 있다.
조선인을 옹호했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나 학살의 현장에서 조선인을 구했던 경찰서장의 일화는 무자비한 증오의 시대에도 보편적 인류애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증명하는 소중한 증언들이다.
일본 가고시마 / 사진 = 언스플래쉬
그렇다고 책은 역사만 다루지 않는다. 여행에세이 느낌도 곳곳에 전해진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함께 일본 거리를 걷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책은 일본을 알기 위한 책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도와준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거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미움보다는 이해를, 화내기보다는 공부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가 더 멋진 어른으로 자라는 길이라고 책은 전한다.
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
김경한 | 쌤앤파커스
불멸, 영생 등 영원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간다. 그렇다면 인생에 한 번 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 온 김경한 저자의 여행은 ‘왜’로 시작했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그만의 고집이 결국 책 ‘인문 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로 까지 엮였다. 2021년에 발간한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와 맥을 같이 하는 이번 책은 전 세계 48개 도시를 가로지르며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장소에 새겨진 거장의 흔적을 좇는다.
스페인 그라나다 / 사진 = 언스플래쉬
저자는 사라진 시간을 찾아 여정을 떠난다. 그곳에서 문학·건축·음악·미술·음식·자연 등을 마주한다. 네팔 히말라야의 쿰부 지역에서 저자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고난에 빠진다. 장엄한 풍경 뒤에 가려진 존재의 소멸을 스스로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삶의 의지를 발견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카프카의 고독과 결합해 독자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는 일곱 살의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험준한 알프스를 넘으며 보았을 풍경을 상상하며, 그 고단했던 여행의 경험이 어떻게 거장의 음악적 뿌리가 됐을지 다양한 생각의 나래를 제공한다.
예술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의 기록 또한 인상적이다. 중국 상하이 피스 호텔에서 활동하는 ‘400세 재즈단’의 사례가 그것이다. 아흔 살의 연주자를 필두로 여든을 넘긴 노장들이 들려주는 올드 재즈는 단순히 음악적 향유를 넘어 전쟁과 격변의 세월을 견뎌낸 도시의 상처를 위로한다.
태국 수코타이 / 사진 = 언스플래쉬
태국 수코타이의 고요한 사원 유적지에서는 불상 앞에서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금강경의 만다라를 떠올리게 하며, 텅 빈 공간이 주는 충만함을 통해 삶의 깨달음에 다가선다.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은 미학적 감동의 정점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안에서 모네의 빛을 만나는 순간, 저자는 자연의 빛이 서서히 기울어가는 찰나의 제전을 지켜보며 예술이 인간의 상상력과 대화하는 방식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미국 나파밸리에서의 와인 체험 또한 술 한 잔을 매개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적 독백으로 흐르며, 사유하는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격조를 보여준다.
미국 나파밸리 / 사진 = 언스플래쉬
이처럼 책에 담긴 기록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거장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독자의 시야는 조금씩 넓어진다. 바쁜 시대에 드물게 허락된 ‘생각하는 여행’의 품격을 선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여행자든 무심히 스쳐 지나갈 법한 거리의 장면에서부터 수천 년의 시간이 퇴적된 유적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눈에 담는 풍경을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간다. 그 여정을 꿰뚫는 것은 누구에게나 삶은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찬란함을 찾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곱씹는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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