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오래 머물고 느리게 걸어야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여행
Google 검색에서 여행플러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오래 머물고 느리게 걸어야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여행
책도 삶도 그 무엇도 금세 진면목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행이 그렇습니다. 짧은 관광만으로 그 나라의, 좁게는 한 도시의 이야기를 느끼기란 어렵습니다. 때문에 오래 머물러야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종건 작가의 ‘여기는 캄보디아입니다’는 2년간 캄보디아 곳곳을 걸으며 앙코르와트 너머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을 발견했습니다. 박미승 작가의 ‘안녕, 산티아고’는 3년에 걸쳐 순례길을 걸으며 남편의 투병으로 지쳐 있던 마음을 천천히 돌아봅니다.
여책저책은 긴 시간과 느린 걸음 속에서 그 땅과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나는 두 저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여기는 캄보디아입니다
김종건 l 책과 나무
여행지의 진짜 모습을 만나려면 얼마나 오래 머물러야 할까. 며칠간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그 나라의 시간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 김종건 작가는 해외봉사단원으로 캄보디아에서 2년을 보내며 앙코르와트에서 시작해 수도 프놈펜과 메콩강의 도시, 국경 지역까지 구석구석 누볐다. 책 ‘여기는 캄보디아 입니다’는 그렇게 발로 걸으며 만난 캄보디아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여행서다.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앙코르와트. 거대한 석조 사원과 정교한 부조, 숲을 집어삼킨 듯한 나무뿌리는 여행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에서 끝나지 않는다.
앙코르 제국의 화려했던 역사 뒤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고, 킬링필드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현재의 캄보디아가 있다. 북적이는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고, 강변에서는 밤의 풍경이 펼쳐진다. 유적과 시장, 기차와 호수, 도시와 숲을 오가는 동안 캄보디아는 하나의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라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책의 중심에는 앙코르 유적이 자리한다. 저자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앙코르톰, 프놈바켕, 따프롬, 쁘레아칸, 닉뽀안, 바꽁, 반띠쓰레이 등 여러 유적을 직접 찾아간다.
그중 바이욘 사원의 얼굴은 특별하다. 3층 중앙성소에 자리한 수많은 얼굴은 바라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이지만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저자는 그 앞에서 인간의 미소와 부처의 미소가 어떻게 다른지를 바라본다. 신비로운 미소를 흉내 내보지만 쉽지 않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누구나 그 미소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는 것이다.
앙코르 유적의 매력은 거대한 규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숲속을 걸으며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 발자국 소리까지 어우러질 때 비로소 그곳의 시간이 느껴진다. 특히 앙코르 제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자연과 유적이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을 만난다.
그러나 이 책이 유적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찬란했던 제국의 역사와 함께 킬링필드의 비극도 마주한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시간은 영광과 비극, 회복이 겹쳐진 시간으로 읽힌다.
저자가 발견한 캄보디아의 또 다른 얼굴은 도시와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이다. 돈레삽 호수에서는 매일 저녁 거대한 자연의 의식이 펼쳐진다. 호수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 순간 사람들은 환호하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저자는 그 풍경 앞에서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차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난다.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를 피해 잠시 옆으로 비켜서는 대나무 열차 ‘노리’.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장면은 캄보디아의 느긋한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속도와 효율이 우선인 세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몬돌끼리의 울창한 숲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일부라는 사실을 배운다. 강가에서 코끼리를 기다리고 함께 물에 들어가는 순간, 자연은 관광의 배경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캄보디아의 매력을 발견한다. 저자는 “캄보디아에서 살면 맘도 너그러워진다”고 말한다. 많이 가지려 하지 않아 욕심이 적고, 더운 날씨 속에서 옷차림도 수수하다. 물질의 기준으로 보면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삶의 모습으로 보면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캄보디아를 특별한 관광지로 포장하지 않는다. 찬란한 사원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시장의 소란, 느린 기차, 숲의 고요함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30년 직장생활을 마친 뒤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봉사단원이 된 저자에게 캄보디아는 단순한 체류지가 아니었다. 앙코르 제국의 역사를 따라가며 현재를 살펴보고, 전국 곳곳을 걸으며 사람과 자연을 만나는 동안 캄보디아는 어느새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공간이 됐다.
책은 그래서 앙코르와트를 보러 떠나는 여행자에게 그 너머를 이야기한다. 돌로 남은 과거뿐 아니라 오늘도 이어지는 캄보디아의 시간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화려한 사원에서 시작해 시장으로, 호수로, 기차로, 깊은 숲으로 이어지는 여행. 그 길에서 만나는 것은 유명 관광지만이 아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는 순간, 느린 속도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여유다.
어쩌면 캄보디아 여행의 진짜 매력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앙코르 제국의 찬란한 어제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말이다. 책 한 권을 들고 느리게 가는 열차에 올라보는 상상을 해보자. 앙코르와트 너머에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캄보디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함께 본 기사: 짧은 추석 연휴, 가족여행 만족도 높이는 맞춤별 여행지 6곳
안녕, 산티아고
박미승 l 미다스북스
여행을 떠날 때 꼭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 오래 달려온 삶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박미승 작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랬다. 남편의 오랜 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는 2023년 늦가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낯선 길 위에서 삶을 다시 바라본 뒤 해마다 그 길로 향했다. ‘안녕, 산티아고’는 그렇게 3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한 사람의 느린 여행 기록이다.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해야 할 일과 맡은 역할에 치이다 보면 정작 ‘나’를 돌볼 시간은 뒤로 밀린다. 작가 역시 그랬다. 남편의 치료를 곁에서 지키고, 일터인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산티아고에서 세운 다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로지 이곳에서는 그저 행복하자는 마음만 가지려 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걷고 싶을 때 걸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애썼던 시간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부딪혀온 날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음껏 단순해지고 솔직해지기로 마음 먹었다.
포르투갈 길을 걷는 여정은 화려하지 않다. 배낭은 무겁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힌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낯선 도시를 지나야 하고 때로는 두려움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투박한 불편함이 여행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걷고, 멈추고, 다시 바라보는 동안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의 온도, 골목의 풍경, 잠시 내리는 빗방울,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의 미소가 모두 특별한 기억이 된다.
포르투는 작가에게 특히 인상적인 도시다. 푸른 하늘과 강, 벽을 가득 채운 파란 타일이 어우러진 풍경 속을 걸으며 그는 ‘달력 속 사진 같은 풍경’을 온몸으로 만난다. 그리고 길을 걷는 순간마다 마음속에 새로운 용기를 채운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작가의 시간을 바꾼다.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가는 대신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바라보게 한다.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여행의 의미를 더한다. 십자가 앞에서 손을 모으고, 낯선 순례자와 눈을 마주치며 “부엔 까미노(Buen Camino·좋은 여행길 되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같은 길 위에서는 잠시 동행자가 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는 순간이 있다.
책의 4장 제목은 ‘쉼표’다. 쉼표는 문장을 끝내지 않는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갈 뿐이다. 작가에게 산티아고의 시간 역시 그랬다. 삶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남편의 투병이라는 현실은 길을 떠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긴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 작가는 특별한 날보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곁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깊은 사랑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산티아고 여행은 현실에서 도망치는 일이 아니다.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에 가깝다. 걷는 동안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책에는 현장감 있는 사진과 재치 있는 일러스트, 여행지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이 어우러진다. 부록에는 포르투갈 길을 비롯해 프랑스 길, 은의 길, 북쪽 길, 프리미티보 길 등 주요 순례길과 준비물, ‘길 위에서 배우는 열 가지 마음’도 담았다. 산티아고를 처음 꿈꾸는 독자에게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걸었는지를 알려주는 데 있지 않다. 그 길을 걷는 동안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빠르게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늘 더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천천히 걷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멈춰 선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더 정확히 알 수도 있다.
이 책은 순례길을 걷고 싶은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일과 역할에 지쳐 ‘나’를 잊은 사람,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한 사람, 자신의 속도로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여행 에세이다. 산티아고에서 작가는 길의 끝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다시 걸어갈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발견한 것은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지금의 삶이었다.
장주영 여행+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