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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웅장한 풍경이나 유명 작품 보다는 사람과의 인연이 진짜 여행이라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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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웅장한 풍경이나 유명 작품 보다는

사람과의 인연이 진짜 여행이라는 이들

어떤 대상을 두고 보겠다와 느끼다는 의미를 달리 합니다. 그 대상이 여행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특정 목적지의 풍경이나 건물 등을 마치 인증하겠다는 식의 여행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설사 그것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더라도 감동과는 거리가 있을 겁니다.

이탈리아 치비타 다 바뇨레조 / 사진 = unsplash

여책저책은 여행을 목적지가 아닌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두 저자의 책을 만납니다. 신지혜 작가는 유럽의 골목과 사람들의 따뜻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요. 김은지 작가는 세계여행을 통해 경쟁과 속도에 얽매였던 자신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웁니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길 위에서 마주한 작은 풍경과 사람, 그리고 그 경험이 남긴 내면의 변화에 주목하는 두 저자의 여행이야기는 그래서 평범하지 않습니다. 여행이 삶을 회복하고 성장시키는 가장 깊은 기록이라고 말하는 두 사람의 여행을 소개합니다.

신지혜의 드로잉 유럽 : 기억의 선을 따라 걷다

신지혜 | 심화북스

여행을 마친 뒤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일까. 웅장한 성당의 첨탑일 수도 있고, 이름난 미술관에서 마주한 명화 한 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해지는 것은 의외로 사소한 장면들이다.

길을 헤매던 여행자에게 손을 꼭 잡고 방향을 알려주던 낯선 할머니의 눈빛, 시장 상인의 환한 미소, 골목 끝 카페에 스며들던 오후의 햇살 등은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스며서 남아 있다. 책 ‘신지혜의 드로잉 유럽 : 기억의 선을 따라 걷다’는 그런 순간들을 다시 불러내는 여행 에세이다.

저자 신지혜는 25년 동안 CBS FM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진행하며 수많은 영화와 음악 속 이야기를 청취자들에게 전해온 방송인이다. 영화와 예술을 통해 삶을 바라보던 그는 이번에는 스케치북과 카메라를 들고 유럽으로 향했다. 그렇게 스페인과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남긴 노트와 사진, 그리고 직접 그린 드로잉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 사진 = unsplash

책은 어디를 가야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보다 여행자가 어떤 마음으로 거리를 걷고 사람을 만나며 기억을 쌓아가는지에 집중한다. 관광 명소를 빠짐없이 둘러보는 대신 골목길에 멈춰 서고 오래된 문 하나와 창문 하나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저자에게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 아니라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저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몬세랏, 그라나다, 톨레도, 코르도바를 차례로 거닐며 화려한 건축물보다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을 기록한다. 단 3개월 배운 서툰 스페인어로 길을 묻자 손을 꼭 잡고 두 번째 골목을 가리켜 주던 바르셀로나의 할머니, 어린아이를 데리고 언덕을 오르는 여행자에게 지름길을 알려준 현지인,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으로 마음을 나눈 시장 상인까지.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프랑스에서는 영화 ‘비포 선셋’의 여운이 흐르는 파리의 서점, 화가 폴 세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틀리에,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아를의 빛까지 영화와 미술, 여행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진다. 오랫동안 영화를 소개해온 저자답게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화적인 장면들이 스며 있다. 독자는 여행기를 읽는 동시에 한 편의 영화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벨기에 브뤼헤 / 사진 = unsplash

벨기에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는 또 다른 추억의 풍경이 펼쳐진다. 운하를 따라 백조가 유유히 헤엄치는 브뤼헤의 오래된 거리, 호수와 알프스가 맞닿은 할슈타트, 그리고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떠올리게 하는 치비타 디 바뇨레조 등이 그거이다. 저자는 유명 관광지를 소비하듯 지나치지 않는다. 한곳에 오래 머물며 빛의 방향과 공기의 온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천천히 기록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드로잉’이다. 저자는 여행 중 촬영한 사진을 단순한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한 장 한 장 손으로 다시 그려냈다. 사진이 순간을 붙잡는 기록이라면 드로잉은 기억을 다시 해석하는 작업이다. 펜 끝에서 되살아난 골목과 창문, 카페와 거리들은 실제 풍경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느리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프랑스 파리 / 사진 = unsplash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가 여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분명해진다. 빠듯한 일정으로 명소를 모두 둘러보는 여행보다,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한 도시를 충분히 걷는 여행이다. 저자는 이를 ‘빠른 포기와 선택, 집중’이라고 표현한다. 덕분에 여행은 체크리스트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이 된다.

문장 역시 잔잔하다. 과장된 감탄이나 화려한 수식 대신 오래 라디오를 진행하며 다듬어진 담백한 문체가 이어진다. “내게 여행의 시간은 회복의 시간이었다”는 고백처럼 책 전체에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흐른다. 여행지에서 만난 작은 친절 하나, 우연히 발견한 골목 하나가 삶을 지탱하는 기억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천천히 일깨운다.

여행은 언젠가 끝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온기와 손으로 다시 그려낸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문다. 이 책은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여행의 본질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기억의 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라고 다정하게 권한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

김은지 | 푸른향기

여행은 때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 아니라 가장 깊이 자신을 마주하는 일일 수 있다. 책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은 경쟁과 속도에 익숙했던 한 청년이 세계를 여행하며 삶의 기준을 다시 세워가는 과정을 담았다.

저자 김은지는 국어 과목을 좋아했지만 더 좋은 대학과 취업을 위해 이과를 선택했고 쉼 없이 스펙을 쌓으며 달려왔다. 그러나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을 박아야 할 만큼 약한 몸은 끝없는 경쟁을 견디지 못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취업 대신 오랫동안 꿈꿔온 세계여행을 선택한다. 이집트 다합에서의 네 달 살기,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 축제, 안데스산맥과 마추픽추를 오르는 여정까지. 낯선 세상에서 만난 사 람들과 풍경은 저자가 믿어왔던 성공의 공식을 하나씩 바꿔놓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여행을 극복의 수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약함을 이겨내려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해(Go slow, but keep going.)”라는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빨라야만 성공한다는 사회의 기준 대신,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는 삶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여행담 역시 화려한 관광지보다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이집트에서 시작한 셰어하우스,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과의 대화,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한 친절과 응원은 세상이 경쟁만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라 서로를 돕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저자가 발견한 것은 새로운 여행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책 곳곳에는 공감을 부르는 문장도 많다. 하고 싶은 일보다 남들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던 시간,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던 마음, 화려한 이력서보다 솔직한 일기를 쓰고 싶었던 고백은 진로와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여행을 통해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이다. 6kg 배낭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덜어낼수록 자유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물건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성공에 대한 강박까지 내려놓으면서 비로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책 ‘어깨부터 허리까지 철심 박고 배낭여행’은 세계 곳곳을 소개하는 여행기가 아니다. 경쟁에 지친 청춘이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성장 기록이자, 여행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빨리 달려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숨이 가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느려도 괜찮다”는 가장 따뜻하고도 단단한 위로를 건넨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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