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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을 멈추자 여행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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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난 괜찮아”라는 거짓말을 멈추자

여행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풍경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여행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장면이 기억될 수는 있지만 각자 느끼는 차이에 따라 그 깊이는 달라질 겁니다. 특히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의 크기는 영향을 더 끼칩니다.

미국 알래스카 / 사진 = 언스플래쉬

이은실 작가의 책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은 퇴사 후 무너진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조용한 내면 여행을 전합니다. 유영근 작가의 책 ‘마침표에서 쉼표로’는 말기암 진단을 받은 저자가 죽음 앞에서 오히려 삶을 향해 떠난 여행을 담습니다.

두 저자는 화려한 풍경보다 자신의 감정과 오늘 하루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데서 진짜 회복과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여책저책은 ‘가장 낯선 목적지는 결국 자기 자신’에 있다는 저자를 만납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

이은실 | 스노우폭스북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종종 새로운 도시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생각을 좀 바꾸면 여행은 집 안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익숙한 출근길이 사라지고, 매일 입던 정장이 옷장 안에 걸린 채 멈춰 선 어느 날. 그때 비로소 가장 낯선 목적지인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은실 작가의 책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은 바로 그 조용한 내면 여행의 기록이다. 27년 동안 삼성생명에서 보험심사와 상담, 교육과 코칭을 맡아온 저자는 누구보다 타인의 불안을 잘 읽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마음은 보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퇴사와 삶의 공백은 ‘괜찮다’고 믿었던 마음이 오래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책은 거창한 성공담도, 극적인 치유담도 아니다. 괜찮은 척 버티던 사람이 다시 숨 쉬는 법을 배워가는 담담한 에세이다.

여행이 길을 잃는 경험이라면, 회복 역시 그렇다. 저자는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춰 자신의 감정을 이름 붙여 보라고 권한다. 들판의 잡초를 억지로 뽑지 않고 풍경의 일부로 바라보듯 불안과 무기력도 나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회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위로를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은 생각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색을 바꾸고, 국 한 그릇을 끓이고, 장을 보러 걸어 나가는 아주 작은 행동들을 처방전처럼 건넨다.

‘주황색 귤의 마법’ 이야기는 그래서 오래 남는다. 영업 현장에서 얼어붙은 분위기를 귤 한 박스가 녹여냈던 경험은 색이 감정과 관계를 얼마나 따뜻하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노란빛을 마시는 차 한 잔, 초록 채소를 고르는 장보기, 형광등 아래 회색으로 보이던 세상이 다시 색을 되찾는 과정은 심리학보다 더 생활에 가까운 언어같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다.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아들과 함께 먹은 컵라면 한 젓가락은 어떤 보양식보다 강한 회복의 상징이 된다. 저자는 행복이 거창한 식탁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음을 느끼는 한 입’에서 시작된다고 전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힘든 날 꺼내 먹는 간장계란밥 하나쯤 있다는 문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읽다 보면 문득 여행지의 호텔 조식보다 집에서 끓인 된장국이 떠오르고, 해외의 멋진 풍경보다 집 앞 마트까지 걷는 10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회복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다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책은 여러 번 일깨운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다. 입사 첫날 어머니가 사주셨던 정장을 다시 꺼내 입기까지의 시간. 딸이 건넨 “엄마, 다시 정장 입는 모습 보고 싶어”라는 한마디는 새로운 직장을 의미하기보다 다시 삶을 선택한 사람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들린다. 정장은 더 이상 직장의 상징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사람의 옷이 된다.

여행은 늘 낯선 곳에서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면 가장 긴 여행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짜 내 마음의 안부를 묻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금 조금 지쳐 있다면 이 책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손을 내민다. 오늘의 회복은 집 앞 골목에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침표에서 쉼표로

유영근 | 라이프어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잠시 일상을 잊기 위해 길을 나선다. 혹시 삶의 끝을 통보받은 뒤 떠나는 여행이라면 어떨까.

책 ‘마침표에서 쉼표로’는 일흔의 나이에 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유영근 저자가 병상에 머무는 대신 58일간 5만2000㎞의 길을 달리며 기록한 여행기다. 그가 향한 곳은 미국 알래스카 북극권부터 캐나다 옐로나이프, 미국 최남단 플로리다 키웨스트까지 이어지는 북미 대륙이다.

저자는 어느 날 “수술 불가, 완치 불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만한 진단 앞에서 저자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자동차를 집 삼아 국경을 넘고, 주유소와 모텔은커녕 인터넷 신호조차 찾기 어려운 오지의 도로를 달렸다.

알래스카의 달튼 하이웨이와 캐나다 북부 리아드 하이웨이에서는 비포장도로와 눈길을 만났고, 연료 부족과 야생동물, 렌터카 교체와 폭설까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여행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저자가 품은 버킷리스트부터 남달랐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북미 최북단 알래스카 북극권 표지선에 서는 것, 그리고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밤하늘에서 오로라를 만나는 것. 두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나선 그는 결국 알래스카에서 플로리다까지 남북으로 종단하고, I-90과 US-50, US-66을 따라 미국 대륙을 여러 차례 동서로 가로지른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한 ‘버킷리스트 여행기’라고 부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느냐가 아니라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길 위에서 삶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되었는가이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의 광활한 풍경과 데날리 국립공원의 산맥,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캐나디언 로키와 나이아가라 폭포, 퀘벡의 거리, 미국 서부의 사막과 국립공원까지. 책에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풍경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는 풍경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린다. 내일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에게 오늘의 풍경은 그 자체로 선물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낭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도 여행을 계속한다고?’ 싶은 순간이 이어진다. 렌터카에 문제가 생기고, 야생 엘크와 충돌하고, 폭설과 폭풍 속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 오지에서는 작은 실수가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두려움을 감추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당황한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라는 길도 정해진 지도 없이 걷는 여행에 가깝다. 어디에서 멈출지,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누구의 도움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저자의 북미 대륙 여행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다. 그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불확실성 앞에서 오히려 삶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책의 제목인 ‘마침표에서 쉼표로’도 같은 의미를 품고 있다. 말기 암 진단은 저자에게 삶의 마침표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끝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쉼표로 바꾸고 다시 길 위에 섰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뒤 병원을 찾은 저자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담당 의사로부터 암 부위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작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저자는 이를 자유로운 영혼과 여행, 그리고 기도가 가져온 힘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한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의미도 특정한 치료 효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선택이다.

저자에게는 58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5만2000㎞를 달렸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오로라와 설산과 사막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여행을 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바라보는 여행이었다.

여행은 때로 삶의 속도를 늦춘다. 평소에는 지나쳤을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낯선 사람의 친절에 마음이 움직이게 하며,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삶의 끝자락에서 떠난 여행은 오히려 삶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지만 이상하게도 읽고 나면 삶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남는다. 끝을 이야기하지만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 미뤄두었던 일을 한번 시작해볼 용기, 그리고 잠시 쉬어가더라도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넨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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