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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야, 그림이야? 이태원 지나던 사람들 멈춰 세운 ‘이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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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이태원 거리를 걷다 발걸음이 멈췄다. 유리창 너머로 뭔가 보였다. 지난 8일 사진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작품 하나가 창가에 걸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봤다.

후지필름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 ‘하우스 오브 포토그래피 서울’였다. 이태원 한복판에 자리 잡았지만 내부 곳곳에 한국 전통 디자인을 녹여냈다. 후지필름 매장과 포토북 라이브러리, 라운지, 전시 공간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다.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멕시코 멕시코시티, 중국 상하이, 홍콩에 이어 지난해 10월 서울에 문을 열었다.

지금 이곳에서 사진가 최랄라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 사진계 거장 구본창 작가의 백자·지화 시리즈 전시에 이은 두 번째 전시다. 최랄라 작가는 인물 사진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패션 화보처럼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구성, 강렬한 색채,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아리송한 분위기. 작품 앞에 서면 ‘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작업과 함께, 사진 위에 드로잉과 페인팅을 직접 얹은 신작을 새롭게 내놨다. 작가가 일상에서 찍어두고 그냥 넘겼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이미지 안에서 자신의 감정과 시선을 발견하고, 그 위에 색과 선을 직접 그려 넣었다. 사진 위를 가로지르는 붓질이 원래 이미지의 흐름을 흔들면서, 사진 전체가 전혀 다른 장면처럼 읽히게 만든다.

작품의 주인공은 늘 사람이다. 최 작가는 “타인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투영하게 된다”고 말했다. 모자, 의상, 색면 같은 요소를 반복적으로 써서 피사체에게 캐릭터와 분위기를 입힌다. 익숙한 것 같은데 어딘가 낯설다. 그 묘한 긴장감이 작품을 오래 보게 만든다.

전시에 걸린 작품은 총 9점이다. 2016년과 2018년 작업 4점, 그리고 올해 신작 5점이다. 신작은 후지필름 X-E5로 촬영했으며, 이전 작업보다 페인팅 표현이 한층 과감해졌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경계가 흐릿한 작업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밖에서 처음 눈길을 붙잡았던 창가의 대형 작품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다. 건물 밖에서 보면 회화처럼 보이고, 안에서 보면 또 다른 사진 작품으로 읽힌다. 같은 작품인데 보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가 된다. 안팎을 두어 번 오가게 만드는 작품이다.

같은 날, 안쪽 세미나실에는 또 다른 전시가 마감을 이틀 앞두고 있었다. 공간을 빼곡하게 채운 건 245권의 더미북(가제본)이었다.

더미북은 정식 출판 전 단계의 가제본으로 한 권의 사진집을 완성됐을 때 구조와 서사, 물성까지 구현한 결과물이다. 어떤 사진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표지 질감은 어떻게 설계할지까지 작가가 직접 결정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일반 단행본처럼 인쇄소에서 제본된 것도 있었고 종이를 손으로 자르고 실로 엮어낸 책도 있었다. 박스에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낸 작품도 있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직접 붙이고 일반 책보다 몇 배는 큰 대형 판형도 눈에 들어왔다.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후지필름 코리아가 올해 처음 꾸린 ‘포토 더미북 어워드 2026’에는 총 245건이 접수됐다. 주최 측도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라고 했다. 접수 기간이 두 달 남짓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진집 출판을 꿈꾸는 창작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현장에서 한 참가자와 얘기를 나눴다. 제본 수업에서 처음 책 만드는 재미를 알았고 해외 더미북 어워드에 먼저 도전하면서 출품하게 됐다고 했다. 더미북을 만드는 이유를 물었더니 “SNS에 올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사진집은 작업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세상에 꺼내놓는 것, 마무리 짓는 느낌이 있어요”라고 밝혔다.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은 직접 손으로 책을 펼쳐볼 수 있었다. 작가 작업 노트도 함께 비치돼 있어 창작 과정과 의도를 같이 살펴볼 수 있었다. 관람 후에는 방문객 투표도 진행됐다.

5월 중순 전문 심사 점수와 현장 투표 결과를 합산해 파이널리스트 20권이 가려졌고, 6월에는 프레젠테이션과 시상식이 열렸다. 1·2등 수상작은 출판사 보스토크 프레스와 손잡고 각각 2000만 원, 1500만 원의 제작지원비를 받아 정식 출판으로 이어진다.

임훈 후지필름 코리아 대표는 “하우스 오브 포토그래피 서울이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 세계를 조명하고, 사진을 더 넓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했다.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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