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것을 깨닫게 한 결정적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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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란 것을 깨닫게 한 결정적 계기
현실에서는 누구나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힘든 일이 있을 겁니다. 각자 그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한 방법 또한 다를 텐데요. 상당수는 해답을 못 찾아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여책저책이 만난 두 작가는 고된 현실을 여행이라는 힘으로 이겨냈는데요.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 / 사진 = 언스플래쉬
노정호 작가는 아내의 암 투병이라는 시련 속에서 가족이 유럽여행하며 작은 따스함을 발견한 기록을 책 ‘그 따스함이 나를 살렸다’에 담았습니다. 이윤숙 작가는 자신의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에서 상실의 슬픔을 안고 떠난 브라질에서 삶의 속도와 방향을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책저책은 여행이 고통을 없애주진 않지만 다시 살아갈 마음을 회복시켜준다는 두 책을 만납니다.
그 따스함이 나를 살렸다
노정호 ㅣ 하움출판사
사진 = 하움출판사
여행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 풍경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콜로세움 등 눈부시고 압도적인 위용에 누구나 감탄할 만한 명소도 그 중 하나지만 때로는 어린 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이름 모를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심지어 여행이 아닌 일상에서 받는 그 느낌도 충분하다.
낯선 풍경 앞에 서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고, 평범한 하루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발견할 수 있다. 노정호 작가의 포토 에세이 ‘그 따스함이 나를 살렸다’는 그런 순간들을 붙잡아 시와 사진으로 옮겼다.
노 작가는 2024년 2월 영국 유학길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아내의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한국의 주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 했지만 당시 의료대란으로 유방암 진료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가족은 영국에서 1년 6개월 동안 항암치료와 수술, 방사선 치료, 후 항암치료를 이어갔다.
사진 = 하움출판사
처음 발견된 것은 왼쪽의 삼중음성 3기 종양이었다. 이후 오른쪽에서도 허투 양성 종양이 발견됐고, 치료 과정에서 항암제를 변경해야 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가족에게 닥친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던 두 아들은 우울감을 겪었고, 막내딸은 영국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말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삶의 가장 시린 계절이었다. 그때 가족에게 유럽 여행이 들어왔다.
가족은 유럽 17개국, 80여 개 도시를 오갔다.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는 선택이었지만 작가에게 여행은 현실을 잠시 외면하기 위한 도피가 아니었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작은 숨구멍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풍경만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마주친 사람의 미소, 자연이 건네는 위로, 가족과 나눈 짧은 대화와 손길 같은 평범한 순간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작가는 그 순간들을 사진과 짧은 시로 기록했다. 그렇게 모인 기록은 한 가족이 힘겨운 시간을 지나며 발견한 ‘따스함’의 목록이 됐다.
사진 = 하움출판사
책은 ‘희망과 긍정의 따스함’ ‘자연의 따스함’ ‘사랑의 따스함’ ‘꿈을 향한 따스함’ 등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목만 보면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책 속에서 말하는 희망은 의외로 소박하다. 여행길에서 딸의 손을 잡는 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일, 가족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처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장면 속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발견한다.
특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 나무와 바다, 계절의 풍경은 단순한 여행 사진의 배경이 아니다. 때로는 지친 마음을 받아주는 품이 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여행은 단순히 ‘어디를 다녀왔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멀리 갔느냐보다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가 중요하다. 낯선 도시와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며 작가는 결국 자신의 삶과 가족을 다시 바라본다.
사진 = 하움출판사
아내의 투병이라는 현실은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치료도 계속되고, 불안과 두려움도 따라온다. 그럼에도 가족은 길을 걸었다. 어쩌면 이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현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견딜 힘을 얻었다는 데 있다.
여행 중 마주한 따스한 순간들은 병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친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내일을 생각할 여유를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깨닫게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여행 사진과 시 사이에서 한 가족의 시간이 보인다. 웃음이 있었고, 걱정도 있었으며, 때로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이 겹쳐져 있었기에 여행의 풍경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그 따스함이 나를 살렸다’가 말하는 여행은 ‘떠남’보다 ‘돌아옴’에 가깝다. 낯선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이전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된다.
사진 = 하움출판사
책은 막바지로 갈수록 한 가족의 여행 이야기를 넘어 독자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누구에게나 삶이 버거운 순간은 찾아온다. 그때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아주 작은 따스함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그 따스함을 하나씩 건져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그래서 이 책은 아름다운 유럽 여행기가면서 동시에 삶을 견디는 한 가족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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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다시 살아갈 마음을 얻는 것,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조금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책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따뜻하게 일깨워준다.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
이윤숙 ㅣ 미다스북스
사진 = 미다스북스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뒤 느끼는 상실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일상은 이전과 같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마음은 자꾸 닫혔다.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자신만 홀로 멈춰 있는 듯했다. 그러다 받아든 한 장의 초대장에 낯선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는 이윤숙 작가가 브라질로 떠나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가는 여행의 기록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익숙한 풍경을 벗어나 낯선 땅에 서면, 오래 멈춰 있던 마음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작가는 그 시간을 억지로 떨쳐내려 하지 않았다.
사진 = 미다스북스
브라질에서 작가가 처음 마주한 것은 거대한 풍경보다 사람들의 태도였다. 느긋하고 다정한 일상, 서로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는 관계, 조금 늦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와이파이 연결이 늦어져도 초조해하지 않고, 약속한 시간이 조금 지나도 여유롭게 기다리는 사람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금 곱씹었다.
브라질의 풍경은 작가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카피바라는 서두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고, 늦게 찾아온 노을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때 돌을 깎아내던 채석장은 다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살아났고, 꽃으로 채워진 거리에는 일상의 온기가 흘렀다.
작가는 이 풍경들을 바라보며 삶을 다시 돌아봤다. 깎여나간 자리에서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고,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으며, 잠시 멈춰 있는 시간 역시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진 = 미다스북스
특히 카피바라는 책 전체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존재처럼 다가온다.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작가는 그 앞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는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를 존중하는 것 역시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이 책의 여행은 빠르게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과 거리가 멀다.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바라보고, 음식과 문화를 경험하면서 그곳의 리듬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마음의 속도를 되찾는다.
책은 ‘낯선 땅을 향하다’ ‘다른 리듬 속에서 살아가다’ ‘서로를 지나 돌아오다’ 등 세 부분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브라질이라는 낯선 공간을 향하지만 여행이 깊어질수록 시선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나아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나 식탁에서 나누는 음식과 웃음,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주고받는 순간들 속에서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다시 발견한다. 결국 자신을 회복시키는 힘 역시 사람에게서 온다는 사실이다.
여행은 상실을 지워주지 않는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품은 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준다. 작가가 브라질에서 경험한 회복 역시 그런 것이었다.
사진 = 미다스북스
작가는 “같은 풍경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고 말한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슬픔이 가득했던 풍경이 돌아올 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끝처럼 느껴졌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책 속 ‘마음이 머무는 자리’와 ‘마음의 정원 노트’는 이 여정을 독자의 삶으로 이어준다. 브라질에서 작가가 던졌던 질문을 독자 역시 자신의 마음에 건네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 때문에 서두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여행은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책 ‘브라질, 내 마음의 정원이 되다’에서 브라질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다. 상실 이후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공간으로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자신의 방향을 돌아보게 한 마음의 정원으로 남는다.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삶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삶. 이 책은 그 길의 끝에서가 아닌 다시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필요한 따뜻한 문장들을 건넨다. 결국 떠난 것은 여행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다시 살아가는 마음이었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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