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절반이 숨 가쁘게 지나간 시점, 숨을 고를 곳이 필요했다. 비행시간 부담은 적으면서 대자연 속에서 온전히 쉴 수 있는 곳. 자연스럽게 중국 쓰촨성 북부로 눈길이 닿았다.
요즘 청두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다. 중국 항공정보포털 및 플랫폼 데이터에 따르면 청두는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의 뒤를 바짝 쫓으며 외국인 선호 목적지 전체 4위를 기록했다. 칭다오 같은 근거리 휴양지를 넘어 깊이 있는 문화와 자연을 즐기려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수요가 장자제와 더불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청두에 발을 디뎠다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대자연, 주자이거우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청두 톈푸국제공항에 내려서 차량이나 지하철로 시내 중심가의 세인트레지스 청두로 이동해 먼저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청두 동역으로 가서 최근 개통된 주자이거우행 고속열차를 탔다. 진촨주역이나 황룽지우자이역까지 2시간쯤 걸렸는데 창밖으로 산세가 점점 험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역에 도착해서는 리조트 픽업 차량으로 갈아타고 다시 2시간 가량 도로를 달렸다.
청두에서 북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몇 해 전 대지진 흔적을 딛고 다시 세워진 건물들이 하나둘 지나간다. 그 길 끝에서 아바 티베트족·창족 자치주가 나오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립공원인 주자이거우 풍경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차구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민산산맥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야크를 키우며 산다. 주자이거우는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라 사람이 늘 많다. 제대로 누리려면 근처에서 하룻밤 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인근에서 묵었다. 새벽에 움직여야 사람 없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조언도 그대로 맞았다. 현지 가이드는 중국인들에게 주자이거우가 그냥 국립공원 하나가 아니라 평생 한 번은 봐야 할 곳으로 통한다고 했다.

중국 문화권은 오래전부터 신선이 산다는 세계 즉 선경을 동경해왔다. 시와 그림으로만 그려오던 풍경이 눈앞에 그대로 있었다. ‘구채구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고 황산의 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는다’는 말도 현지에서 여러 번 들었다. 명절마다 재방송되는 1986년작 드라마 ‘서유기’ 오프닝 장면이 촬영된 곳도 여기 진주탄 폭포다. 가이드가 가리킨 자리에 서니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이 폭포 위 바위를 걸어가던 장면이 겹쳐 보였다.

호수 앞에 서면 그냥 파랗거나 투명한 정도가 아니다. 물속 석회질 성분과 수생식물 때문에 햇살 각도가 바뀔 때마다 에메랄드 사파이어 터키석 빛깔이 번갈아 나타났다. 이유를 물어보니 수만 년에 걸친 지질 작용이라고 했다. 민산산맥의 빙하와 눈이 녹아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계곡 곳곳에서 다시 솟아 호수를 이룬다. 진짜 이유는 그 물이 거쳐온 석회암 대지에 있었다. 빙하 녹은 물이 석회암을 오랜 세월 깎아내면서 탄산칼슘 같은 미네랄 성분이 짙게 녹아들고 이 성분이 빛을 반사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 파장이 짧은 청색과 녹색 계열만 튕겨나가 눈에 들어오다 보니 에메랄드빛으로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호수 바닥의 백색 석회 침전물이 빛을 한 번 더 반사하고 차가운 기후 덕분에 이끼도 안 생겨서 수십 미터 아래 바닥의 나무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국립공원에서 차로 20분쯤 이동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중차구 계곡이 나온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티베트족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초지 위로는 야크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다. 이 계곡 안쪽에 이번 여정의 숙소인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가 있다.
주자이거우를 온전히 누리는 곳

리사이 밸리 리츠칼튼 리저브는 2023년 6월 개장했다. 전 세계 여섯 번째이자 중국에서는 첫 번째 리츠칼튼 리저브 호텔이다. 미쉐린 가이드 최상위 등급인 3 미쉐린 키를 받은 중국 본토 첫 호텔이자 유일한 호텔이기도 하다. 리조트는 약 7만2000ha 자연보호구역 안에 있어서 창밖에 인공 구조물이라곤 거의 안 보였다. 야생 조류만 140종 가까이 산다고 하니 여기가 얼마나 손대지 않은 땅인지 짐작이 갔다.
글로벌 최대 호텔 체인 메리어트의 리츠칼튼과 리츠칼튼 리저브는 지향점이 다르다. 리저브는 전 세계에 몇 곳만 있는 은신처 개념이라 대도시가 아니라 자연 속 오지에 자리하고 객실 수도 100개가 안 된다고 한다. 표준화된 서비스를 내세우는 일반 리츠칼튼과 달리 건축부터 소품 액티비티까지 그 지역 문화를 그대로 담아내고 서비스도 매뉴얼보다는 투숙객 한 명 한 명에 맞춘 전담 버틀러 방식으로 돌아간다.
호텔 이름 ‘리사이’가 티베트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라는 걸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중국어로 아홉 개의 마을을 뜻하는 주자이거우와도 이어지는 이름이다. 실제로 이 계곡을 따라 오래된 티베트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어 주자이거우가 아홉 마을의 계곡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호텔이 있는 중차 계곡은 게사르 왕이 타고 다녔다는 신성한 독수리가 내려앉은 곳으로 전해진다.
건물을 둘러보다 보니 곳곳에서 설계 의도가 읽혔다. 미국 건축회사 WATG와 인도네시아 인테리어 디자이너 자야 이브라힘의 팀 그리고 중국 서남 건축설계연구원이 함께 만들었고 상세 디자인은 진탕랑이 맡았다.
웰컴 파빌리온을 지나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입구 양옆의 조각 작품 두 점이 눈에 들어왔다. 원목을 거의 다듬지 않고 그대로 세운 형태였다. 2013년 공사가 시작될 때 환경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렇게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에 현대적인 호텔을 짓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지형과 경관을 최대한 살리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조각에 더해진 수공예 황동 장식은 자연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존재하려는 태도를 나타낸다고 했다.
로비 안으로 들어서니 히말라야 에센셜 오일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고도 적응에 도움을 준다며 시그니처 웰컴 드링크를 내줬는데 고산지대 보리를 볶아 로즈마리와 송판 꿀을 섞은 음료였다. 단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고산 보리는 티베트 사람들의 주식이자 문화적으로 중요한 곡물이다.
로비 공간 자체가 전통 티베트 가옥의 거실을 본떠 지어졌다. 귀한 손님을 노래와 춤으로 맞는 티베트 전통에 따라 리사이 밸리에서도 웰컴 댄스를 준비해두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로비 한가운데 놓인 보리수 뿌리였다. 2017년 태국 치앙마이의 오래된 사원이 이전하면서 나온 나무 기둥을 호텔 측이 요청해 옮겨왔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해 구채구에 지진이 나면서 호텔 프로젝트가 미뤄졌고 이 나무는 6년 동안 힐튼 리조트 로비에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그 6년 사이 구채구는 지진과 팬데믹을 차례로 겪고 다시 살아났다.
로비 바깥으로 나가면 계단식 들판에서 야크와 말이 풀을 뜯는 보리 빌리지가 보였다. 왼편 산기슭에는 랑 빌리지가 있는데 멀리서 보이는 산 모양이 누워 있는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호텔 수건에 새겨진 코끼리 무늬의 유래였다.
리조트는 전체적으로 전통 산악 티베트 마을이 등고선을 따라 흩어져 자리하던 배치를 그대로 가져와 계곡 건너편 보리마을과 마주 보게 지었다. 포레스트 그린 에메랄드 아이스 블루 색을 곳곳에 써서 바깥 풍경과 이어지게 했고 로비 구조도 좌우 대칭으로 배열해 티베트 건축 특유의 엄숙한 느낌을 살렸다.

티베트족과 창족의 문화적 디테일이 숨쉬는 빌라
산기슭을 따라 87개의 독립형 빌라가 흩어져 있다. 1베드룸부터 3베드룸까지 있고 면적은 158~428㎡까지 다양했다. 빌라에는 프라이빗 테라스가 딸려 있었고 바닥 난방과 가습 공조 시스템 덕에 고산지대인데도 실내 온도가 편안했다. 2인용 샤워기와 큼직한 더블 욕조도 있었다. 버튼 하나로 투명도가 바뀌는 프라이버시 유리도 인상적이었다.

창문이 커서 침대에 누워서도 산과 계곡이 그대로 보였다. 현지 자재와 티베트족 창족의 문화적 디테일이 벽 곳곳에 배어 있었고 가장 작은 빌라도 일반 호텔 기준으로는 넓은 편이었다.
가장 큰 빌라인 888호는 침실 3개짜리로 가족 단위나 넓은 공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냐바라는 이름의 버틀러가 빌라마다 배정돼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연락하면 됐다. 맞은편 보리에 마을과도 연결돼 있어서 원하면 직접 걸어가 볼 수도 있었다.

부대시설로는 약 2500㎡ 규모 스파가 있었다. 계곡 원주민들이 오래 이어온 지혜와 전통을 담은 트리트먼트를 받았는데 트리트먼트 룸이 7개 있고 싱잉볼 테라피 같은 명상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에는 사우나와 온수 탕 마사지 탕이 있었고 건식과 습식 사우나도 따로 갖춰져 있었다. 실내 온수 수영장과 24시간 운영되는 피트니스 센터도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가족들을 위한 리저브 키즈 클럽에서는 리사이 키즈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티베트 사운드 테라피 명상 숲 트레킹 전통 가옥 방문 같은 체험이 포함돼 있었다. 3층엔 체스 카드 룸 어린이 놀이 공간 당구 룸을 갖춘 레크리에이션 센터도 있었다.

로비 라운지는 티베트 가옥의 화덕 문화를 담은 공간이다. 매일 저녁 벽난로에 불을 밝히는 세리머니가 열렸고 투숙객도 전통 궈좡 춤에 함께할 수 있었다. 테라스에서는 눈 덮인 바이젠 성산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보였다.
식음업장은 4곳이었다. 방에서는 24시간 룸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중식당 차이린쉬안에서는 쓰촨과 주자이구 요리 그리고 클래식 중국 요리를 맛봤다. 10명에서 18명까지 들어가는 프라이빗 다이닝 룸이 네 개 있었다. 입구에 깔린 색감 선명한 티베트 카펫과 티베트 마을을 모티프로 한 접시 패턴이 눈에 띄었다. 칠보 공예로 만든 아트워크 두 점은 주자이거우 안의 108개 고산 호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올데이 다이닝인 보리 빌리지에서는 현지 농가와 협업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냈다. 아침엔 현지식과 중식이 섞인 세미 뷔페 저녁엔 단품 메뉴와 훠궈가 나왔다. 테이블웨어가 대부분 적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식사하는 내내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파인 다이닝인 라 몽타뉴에서는 산 전망을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백동 소재 가구와 장식을 써서 은빛이 감도는 모던한 분위기가 다른 다이닝 공간들과는 뚜렷이 달랐다.
밤에는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티베탄 나이트 리추얼에 참여했다. 니에바가 부르는 축배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스타게이징 나이트도 있었고 산속 샘물과 천연 허브로 향을 직접 빚는 티베탄 인센스 만들기 체험도 마련돼 있었다. 히말라야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이라고 했다.
청두/ 글,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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