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무심코 지나친 낡은 간판 하나를 알면 여행이 달라진다

여행플러스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Google 검색에서 여행플러스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무심코 지나친 낡은 간판 하나를 알면 여행이 달라진다

빨리빨리.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하면 떠오르는 첫인상입니다. 여행지에서도 이 이미지는 유효합니다. 유독 한국인들은 유명 여행지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풍경을 훑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보다 많이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는 장점 뒤에는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삶을 놓칠 수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친 간판과 골목에서, 뜻 모를 표식 등에서 일반적인 여행과 다른 깊은 여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김지원 작가의 ‘도시 감각’은 영국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 보행자 안내 표지판, 빨간 우체통, 블루 플라크 같은 사소한 사물에서 도시의 시간과 사람을 향한 배려를 발견합니다.

모로코 / 사진 = 언스플래쉬

박진배 작가의 ‘고농축 디자인 스토리’는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입구, 미국 뉴욕의 공사 비계, 포르투갈의 푸른 타일 같은 도시의 색채에서 공간에 깃든 문화의 결을 읽어냅니다.

두 저자 모두 디자인의 눈으로 도시와 공간을 다시 읽는 여행을 전합니다. 좋은 공간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과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두 책은 말합니다.

도시 감각

김지원 ㅣ 위즈덤하우스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 창문 너머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걸음을 늦추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즐기는 방식도 비슷하다. 보통 여행지에 도착하면 유명한 명소부터 찾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사소한 장면일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여행의 묘미는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느냐보다 그 도시의 일상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았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산업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연구자인 김지원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책 ‘도시 감각‘을 출간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영국 런던을 오가며 발견한 사물과 공간,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도시를 읽는 다섯 가지 감각을 제안한다. 길 위의 감각에서 손 안의 감각, 골목과 동네의 감각, 공동의 감각, 열린 예술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저자가 먼저 주목한 것은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와 노란색 보행자 안내 표지판이다. 1931년 런던 지하철의 전기 설계사 해리 벡이 고안한 노선도는 실제 지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역과 역 사이의 연결 관계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지리적 정확성보다 이용자의 편의를 앞세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하철 노선도의 기본 형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행자 안내 체계인 ‘레지블 런던’ 역시 흥미롭다. 주변의 주요 지점과 이동 경로를 중심으로 정보를 제공해 낯선 여행자도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다. 좋은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은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을 편리하게 하고 불안을 덜어주는 장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런던 거리의 빨간 우체통도 빼놓을 수 없다.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도 우체통은 거리 곳곳에서 제자리를 지킨다. 저자는 이를 단순히 낡은 사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과 애정이 쌓인 디자인 아이콘이자 도시의 시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읽어낸다.

역사적 인물이 살았거나 활동했던 건물에 붙이는 파란색 명판 ‘블루 플라크’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건물 외벽의 작은 표식 하나가 그곳에 깃든 삶과 역사를 들려준다.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이미 존재하는 것에 담긴 시간을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의 감각은 거리뿐 아니라 손안의 사물에서도 발견된다. 영국인에게 차 한 잔은 목을 축이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생활의 의식이다. 찻잔에는 문화와 역사가 담기고 때로는 유머도 깃든다.

주방용품 브랜드 조셉조셉은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도시인의 생활에 주목한다. 수납 효율을 높이고 사용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조리도구는 디자인이 사람의 시간과 공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한다. 펭귄 북스의 문고본 디자인 역시 책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문화의 문턱을 낮춘 사례다.

저자의 시선은 런던 동부 쇼디치의 골목과 상점으로도 향한다. 다양한 문화와 창작 에너지가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상점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새로운 취향과 아이디어가 교환되는 공간이 된다. 오래된 가게의 변천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오늘의 동네가 수많은 사람의 삶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졌음을 일깨운다.

도시의 매력은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공간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고 그곳에서 이어져온 관계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과거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재생한 테이트 모던은 산업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문화 공간으로 되살렸다. 공원과 공동 정원, 창작자들의 작업실 역시 시민이 머물고 참여하며 도시와 관계를 맺는 장소로 거듭난다.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도시는 반드시 크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누구나 길을 찾기 쉽고, 잠시 쉬어갈 곳이 있으며, 오래된 기억이 존중받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도시다. 그 안에서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다른 도시의 매력만이 아닐 것이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동네의 표지판과 오래된 가게, 작은 공원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일도 여행의 연장선이다. 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보고, 대형 마트 대신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번화한 대로 대신 익숙한 골목에서 잠시 발걸음을 늦춰보자.

고농축 디자인 스토리

박진배 ㅣ 효형출판

가끔 거리를 지나다 오래된 간판에 시선이 머물 때가 있다. 그 간판 하나로 그 오래된 골목이 번쩍이는 쇼윈도보다 인상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간판 하나가 마음을 이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 공간에 쌓인 시간과 사람들의 취향,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섬세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힘일 것이다.

박진배 뉴욕 패션공과대학교(FIT) 교수의 책 ‘고농축 디자인 스토리’는 바로 그 매력을 찾아 떠나는 세계 공간 기행이다. ‘공간미식가’와 ‘공간력 수업’에 이은 공간 시리즈의 완결작으로 도시와 건축, 자연과 브랜드, 오브제와 공공디자인을 넘나들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의 의미를 짚는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공간에 깃든 문화의 결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 / 사진 = 언스플래쉬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입구가 좋은 예다. 지하철역은 어디서나 이동을 위한 시설이지만 파리에서는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적인 입구가 도시의 개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 평범한 출입구에 디자인을 더하자 기능적인 시설이 여행자가 찾아가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공간의 쓰임새는 그대로여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경험은 달라진다.

미국 뉴욕의 거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건물 공사 때 설치하는 비계는 대개 불편하고 어수선한 구조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들은 이를 독특한 시각적 장치로 활용해 도시 경관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더한다. 가려야 할 대상을 오히려 새로운 볼거리로 만든 것이다. 기획과 디자인이 결합하면 불편한 공간도 매력적인 경험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미국 뉴욕 / 사진 = 언스플래쉬

반대로 훌륭한 건축이라도 사람들의 생활과 어울리지 않으면 외면받을 수 있다. 저자는 건축가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시각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강조한다. 건축의 아름다움은 외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머무르며 공간을 경험하는지까지 고려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런 관점은 여행자가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꾼다. 멋진 건물을 만났을 때 외관만 감상하는 대신 왜 그 자리에 그런 형태로 지어졌는지,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를 알게 되면 익숙한 건축물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책은 도시를 벗어나 자연이 빚어낸 풍경으로 시선을 넓힌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초원 발도르차, 스위스의 마터호른, 모로코의 오아시스 등 세계 곳곳의 장소를 살펴보며 아름다운 풍경이 자연의 선물만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오랜 시간 땅을 가꾸고 자연과 공존해온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가 풍경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포르투 / 사진 = 언스플래쉬

브랜드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공간 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 제품을 감싼 포장을 풀 때의 설렘,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상과 소품은 소비자의 기억을 형성한다. 온라인 쇼핑이 편리해진 시대에도 오프라인 공간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감각과 감정이 브랜드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저자는 공공디자인에도 주목한다. 포르투갈의 푸른 타일과 스페인 세비야의 노란색처럼 도시를 상징하는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다. 도시 곳곳의 조형물과 작은 쉼터, 자투리 공간 역시 제대로 활용하면 일상에 여유를 더하고 여행자의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스페인 세비야 / 사진 = 언스플래쉬

물론 모든 공간이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특정 사람의 접근을 막거나 이용을 불편하게 만드는 ‘배제 건축’의 문제도 짚는다.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하는 순간, 아름다움의 기준은 외관을 넘어 사회적 배려와 공공성으로 확장된다.

책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풍경을 읽는 안목을, 공간과 디자인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획의 실마리를 건넨다. 책장을 덮고 나면 여행지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건물과 간판, 거리의 색채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
여행플러스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트렌디'한 여행 정보를 받아보세요!
https://www.instagram.com/trip_plus/
2.2K
게시물
23.2K
팔로워
2
팔로우

관련 기사

여행플러스
viewus@mk.co.kr

댓글0

300

댓글0

[여행꿀팁] 랭킹 뉴스

  • [여행+빅데이터] 日 관광객, 한국 찾아 다른 나라 관광객보다 3배 가까이 더 가는 여행
  • “파리 공항은 21번째 구” 비행기 내리기 전부터 시작되는 프랑스 여행
  • [여행+빅데이터] 올가을, 해외 항공권 검색량 여름보다 40%·호텔 34% 급증한 이유 보니
  • [여행+빅데이터] 푸꾸옥 뜨고 정선은 날고…‘극과 극’의 올 겨울 가족여행, 미리 살펴보니
  • [여행+빅데이터] 요즘 푸른 눈 등산객 많이 보인다 했더니 “역시 이유 있었네”
  • 3개월 연속 인상… 11월 국제선 유류할증료 또 오른다 [항공+]

당신을 위한 인기글

  • 7000억원 금융사기 피해자들이…유시민만 보면 치를 떠는 이유
  • 어떻게든 李 대통령을 범인으로 만들어 감옥에 넣으려 한 이 검사의 정체
  • 에어로빅 강사였다가 지하철 포스터 한 장으로 대박나 배우가 된 연예인
  • 서태지가 너무 예쁘다며 수백 명 중 직접 고른 9살 소녀…결국 탑배우 되다
  • 보수진영과 국민의힘 도움받아 부활하던 연예인…결국 또 사고쳐 ‘나락’
  • 송중기에게 前 아내 송혜교에 대해 말했더니 순간 얼굴 굳어지더니…
  • 현재 해외에서 사기꾼으로 욕먹고 있는 한국 대표 유튜버
  •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10년째 日 입국 금지 당한 한국 연예인 정체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