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함께’보다는 ‘나 혼자’를 택한 여인의 용기 있는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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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함께’보다는 ‘나 혼자’를 택한 여인의 용기 있는 여행 이야기
여행의 의미 또는 기억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누구’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음에 잘 맞던 친구도 여행만 가면 싸웠다는 이야기가 은근히 많죠. 심지어 신혼여행이 이혼여행으로 바뀌는 이들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누구’라는 존재보다는 ‘나’에 집중하는 여행법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혼여행’ ‘나홀로 여행’ 등으로 부르죠. 이렇게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남의 시선과 사회적 역할에서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오롯이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매력이 있죠.

인천 영종도 마시안 해변 일몰 / 사진 = 인천관광공사
최유진 작가의 ‘혼여행 기록집’은 청춘의 도피처 찾기의 한 방법으로, 박미희 작가의 ‘우아한 여행’은 중년의 아줌마가 배낭을 메고 일구어낸 자신의 첫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을 중심으로 풀어냅니다. 두 저자는 혼자가 되는 수고를 통해 희미해진 나의 취향과 내면의 힘을 발견합니다.
여행플러스는 남과 온전히 함께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먼저 홀로 서야 한다는 두 책의 이야기를 통해 단단한 용기를 전합니다.
혼여행 기록집 – 내가 차린 고요
최유진 | 동양북스

눈을 뜨자마자 지난 밤 소셜 미디어에 쏟아진 남의 일상을 확인한다. 하루 이틀이 아닌 수없이 많은 날 동안 그런 흐름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슬퍼보였다. 나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향해 가야 할까. 수많은 관계의 끈과 내게 주어진 가벼운 듯 무거운 책임감에 언제까지 짓눌려야 할까.
저자 최유진은 책 ‘혼여행 기록집’을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부제를 ‘내가 차린 고요’라 붙인 이유도 세상의 잔잔함과 고요를 발굴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걷고, 쓰고, 여행한 저자는 혼여행이 단순히 쓸쓸한 독백이 아니라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자기 혁명’의 과정임을 나직한 목소리로 증명해 보인다.
저자는 12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인플루언서다. 그는 수많은 팔로어함께 혼자 떠나는 여정의 가치를 나누어 왔다. 저자의 첫 혼여행은 거창한 탐험이 아닌 철저한 ‘도피’에서 시작했다. 잘 살아보려 애쓸수록 숨이 턱 막히던 어느 날, 저자는 지금 이곳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다는 마음 하나로 부산행 주말 기차표를 끊었다.

제주 산굼부리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스스로 나약해졌다는 자책도 잠시뿐이었다. 길 위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은 저자의 마음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책은 묵호의 푸른 바다부터 포항의 겨울, 통영의 따스함, 제주의 흐린 하늘, 영종도의 노을에 이르기까지 전국 20여 곳의 혼여행지를 거치며 저자가 온전히 자신과 대화해 나간 20일간의 여정을 서정적인 문체와 감성적인 사진으로 촘촘히 엮어냈다.
이 책이 여타의 여행 에세이와 궤를 달리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기록’이다. 흔히 혼자 떠나는 여행은 문득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멀뚱히 흘려보내는 시간 앞의 심심함으로 인해 망설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쓸쓸함의 여백을 기록이라는 도구로 채워 넣으며 혼여행을 ‘혼자 떠난 여행’이 아닌 ‘나와 함께하는 여행’으로 전환시킨다.
글을 쓰고 사진을 남기는 행위는 길 위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아침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고양이,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카페 자리, 그날의 공기에 맞추어 골라 듣는 음악처럼 그냥 지나쳐도 좋을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아 기록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같은 노력이 비효율적인 낭만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었다고 고백했다.

경남 통영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저자는 또 혼자 떠나는 여정을 ‘나와 친해지기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다. 내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나의 희미해진 취향을 선명하게 다듬어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된다. 책의 각 장 끝에 수록된 ‘혼여행 자문자답’과 ‘취향을 알아가는 질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유도한다. 자연의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내 안의 서툰 어린아이를 마주하고, 해가 저무는 노을 속을 걸으며 생각보다 자신이 강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책은 감성적인 에세이의 성격을 띠면서도 혼자 떠나기를 주저하는 초보 여행자들을 위한 매우 실용적인 안내서 역할도 겸한다. 유형별, 계절별로 엄선된 추천 혼여행지와 숙소 정보는 물론, 책 곳곳에 QR코드를 삽입해 저자가 직접 제작한 ‘혼여행 지도’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득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 위를 무심히 돌고 있다면, 홀로 서는 것이 두려워 늘 타인의 그림자 뒤에 숨어 있었다면 이 책이 건네는 다정한 조각들을 가만히 만져볼 일이다. 우리는 비로소 나만의 속도로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갈 작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우아한 여행
박미희 | 산지니

착한 딸, 살림하는 아내, 자식 키우는 엄마.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중년의 여성 모습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을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대표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아줌마라는 역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뒤에 부여되는 역할이 어마어마하다. 늘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돌보고 주변부로 물러서야 하는 희생의 연속을 감내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중년 여성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위해 자신의 이름 석 자와 마음속 꿈을 접어둔 채 살아간다. 책 ‘우아한 여행’의 저자 박미희는 쉰이 넘은 나이에 이 익숙하고도 무거운 이름표들을 미련 없이 떼어냈다.
남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선 그는 배낭 하나를 메고 542일간의 전국 일주라는 파격적인 여정에 올랐다. 우리나라 모든 시와 군에서 사흘씩 살아보겠다는 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평생 가족의 그림자로 살던 한 여성이 온전한 ‘나’로 거듭나기 위한 처절하고도 웅장한 독립 선언이다.
약학과를 졸업하고 대안학교 교사, 숲해설가, 생태공예가로 성실하게 살아온 저자 역시 여느 동년배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숨어 있었다. 책은 저자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기록한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따뜻한 문체로 풀어낸다.

강원 정선 소금강 / 사진 = 한국관광공사
강원도 정선에서 난생처음 손을 들어 시도한 히치하이크, 경북 고령의 시골길에서 만난 할머니 친구와의 가슴 뭉클한 우정, 그리고 꿈에 그리던 섬 인천 백령도에서 마주한 평생 잊지 못할 대자연의 압도적인 풍경까지, 저자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새로운 세계의 서사가 펼쳐진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중년 여성의 홀로 여행이 단순히 노년의 무료함을 달래는 여가나 유람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평생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느라 지쳐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 주변에서 쏟아진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는 걱정과 우려가 모두 기우였음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오히려 스스로가 ‘여자라서 못 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움츠러든 마음에 갇혀 있었음을 깨닫는다.
거친 길 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마다 저자의 내면에는 “여자라고 못 할 게 없다”는 단단한 자긍심과 용기가 쌓여간다. 바쁜 일상과 어른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깊숙이 묻어두었던 마음속 ‘주근깨 소녀’가 기지개를 켜고 눈을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는 대목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풍경을 통해 인생의 후반기를 변주하는 법을 배운다. 홀로 전국의 모텔 방을 전전하며 삼 일씩 살아내는 과정은 외로움과의 사투가 아니라 비로소 홀로 온전히 서는 법을 배우는 즐거운 훈련이었다.
저자는 “진정으로 홀로 되어 선 사람만이 더불어 온전히 둘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내면의 상처와 불안을 그대로 둔 채 타인에게 의지하려 하기보다 홀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철학적 통찰이다.

인천 백령도/ 사진 = 한국관광공사
숲해설가답게 자연의 변화 속에서 자기 앞의 생을 긍정하고, 마른 잎과 나무토막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듯 길 위의 낯선 인연들을 삶의 소중한 꽃으로 피워내는 저자의 시선은 깊고 유연하다. 책은 특별하고 잘난 사람만이 떠나는 거창한 탐험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어리숙한 아줌마도 원한다면 언제든 멋진 여행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다정히 말한다.
저자는 인생의 전반전을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채웠다면 남은 인생의 2막은 오롯이 나를 위한 새로움으로 채워가자는 초대장이라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는 홀로 여행을 시작하려는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 세우기와 필수 준비물 리스트 등 실용적인 팁을 아낌없이 담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궤도 위를 돌며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거나 나보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느라 떠나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나침반이 돼준다. 성별과 나이라는 제약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유인임을 선포한 춘천 아줌마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책장을 덮는 순간,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나만의 우아한 여정을 시작하고 싶다는 설렘의 시동이 켜질지 모른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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