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멜버른을 찾은 여행자라면 하루쯤은 도시의 바쁜 리듬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꿈꾸게 된다. 그런 이들에게 야라 밸리(Yarra Valley)는 단연 최고의 근교 여행지다.

사진= 언스플래쉬
멜버른 도심에서 차로 약 한 시간, 짧은 드라이브만으로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펼쳐지는 넓은 포도밭, 유칼립투스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크고 작은 마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까지. 야라 밸리는 호주의 다양한 매력을 농축해 놓은 듯한 곳이다. 야라 밸리는 와이너리 투어로 잘 알려졌지만, 구석구석 야라 밸리를 여행하다 보면 훨씬 더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야라 밸리에서는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 1인당 약 15호주 달러 (한화 약 14,000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테이스팅을 즐길 수 있다.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경험을 넘어, 포도밭 풍경과 와이너리의 철학까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야라 밸리 여행의 핵심이다.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예링 스테이션(Yering Station)이다. 이곳은 빅토리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으로, 183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셀러 도어에서는 세월의 깊이를 담은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내부 곳곳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와인뿐 아니라 예술을 함께 즐기는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언덕 위에 자리한 와이너리 건물과 그 앞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야라 밸리의 포도밭 풍경은 호주의 광활한 자연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셀러 도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의 레스토랑은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간이다. 계절별로 구성되는 고급스러운 코스 메뉴는 지역 식재료의 신선함을 살린 요리들로 구성되며, 와인과의 페어링을 통해 풍미의 깊이를 더한다.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야라 밸리의 전경은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우아한 식사 장소이다.

두 번째로 소개할 곳은 헬렌 앤 조이 에스테이트 (Helen & Joey Estate)다. 야라 밸리에서도 비교적 젊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와이너리는, 언덕 위에 자리한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광활한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름에서 풍기듯, 가족적인 따뜻함과 편안함이 공간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 와인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유니콘 로고가 그려진 시그니처 와인 라인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과 맛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테라스나 셀러 도어 앞에서 야라 밸리의 감성을 담아낸 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이곳의 와인 테이스팅은 기본적으로 1인당 6종 정도의 와인을 제공하지만, 시음 중 와인 서버에게 선호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하면 취향에 맞춰 두세 잔 정도를 더 제안해 주기도 한다.

와인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적인 경험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곳은 오크릿지 와인즈 (Oakridge Wines)다. 미슐랭 출신 셰프가 이끄는 레스토랑과 함께, 야라 밸리에서 가장 품격 있는 미식 경험을 제공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다.

셀러 도어에서는 오크릿지를 대표하는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포함해 다양한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더욱 깊이 있는 와인 체험을 원한다면 사전 예약을 통해 ‘샤르도네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다. 정갈한 와인 설명과 함께 토양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며, 전문적인 시음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자체 농장에서 수확한 신선한 허브와 지역 제철 식재료로 구성된 메뉴가 제공되며, 각각의 요리에는 그에 어울리는 와인이 정성스럽게 페어링 된다.

와이너리 앞 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따라 산책하거나, 포도밭 전망이 좋은 벤치에 앉아 직접 고른 와인을 천천히 즐기는 시간도 오크릿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하지만 야라 밸리는 단지 와인만을 위한 곳은 아니다.
(사진 21, 출처 – Four Pillars Gin)이곳에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크래프트 진 증류소 중 하나인 포 필라스 진(Four Pillars Gin)이 자리하고 있다. 반짝이는 구리 증류기에서 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고, 다양한 향과 재료로 만들어진 진을 시음해 보는 경험은 또 다른 미식 여행의 시작이다.

사진= 포 필라스 진
진을 활용한 독창적인 칵테일, 그리고 진을 테마로 한 스낵 메뉴도 이곳만의 즐거움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증류소의 공간과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매료될 수 있다.
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운 시간도 야라 밸리 여행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야라 레인지 국립공원(Yarra Ranges National Park)은 울창한 삼림과 고요한 계곡이 어우러진 호주의 대표적인 자연 보호 구역이다.

배저 위어 (Badger Weir) 산책로는 고사리와 유칼립투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속을 따라 걷는 코스로, 도심과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침 시간에 이곳을 방문하면 새벽이슬이 맺힌 이끼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고요한 숲길을 따라 걷기에 좋다. 조금 더 이색적인 풍경을 원한다면 마룬다 댐 전망대 (Maroondah Reservoir Park)에 올라 멀리 펼쳐진 호수와 숲을 바라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호주의 야생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싶다면, ‘힐스빌 보호소(Healesville Sanctuary)’는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동물원이 아닌, 호주 토종 동물의 보호와 복원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7 호주 달러로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고요한 숲과 연못이 어우러진 공간 안에서, 코알라, 캥거루, 에뮤, 웜뱃, 바늘두더지, 오리너구리 같은 호주의 상징적인 동물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멸종 위기에 놓인 종들의 보호 활동과 교육적 체험 행사를 제공하니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자들에게 추천.
낮에는 와인과 자연, 동물들과의 시간을 즐겼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는 피크닉과 노을만큼 완벽한 것이 없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비밀의 장소’로 알려진 히바스 룩아웃 포인트(Hiba’s Lookout Point)는 야라 밸리의 구불구불한 언덕과 포도밭, 그리고 붉게 물드는 하늘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다. 근처의 피자 테이크아웃 전문점인 Slice of Italy Pizzeria에서 피자 한 판을 사고 와이너리에서 구매한 와인 한 병을 챙겨 이곳을 찾는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낭만이 펼쳐진다. 포도밭 너머로 해가 지고, 와인잔 너머로 불그스름한 노을을 보며 여유로운 야라 밸리에서의 여행을 더욱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야라 밸리는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하루 이상 머무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힐스빌과 야라 글렌, 콜드스트림 등 지역 중심 마을에는 분위기 좋은 에어비앤비 숙소부터 부티크 와이너리 호텔까지 다양한 숙박 옵션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힐스빌은 걸어서 와이너리와 레스토랑, 상점들을 오갈 수 있어 자동차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마을이다. 계절마다 열리는 주말 시장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레스토랑의 계절 한정 메뉴는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별미다.
운전이 부담스럽다면 멜버른에서 출발하는 일일 투어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렌터카를 활용해 자유롭게 여행 동선을 짜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전혀 다른 감성을 전하는 야라 밸리에서의 여행은 호주 여행의 깊이와 풍요로움을 한층 더해줄 것이다.
글·사진ⓒ 원더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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