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 연적 분한 대학생 전은슬씨 대상
275팀 643명 도전…역대 최대 규모
관객 3천명 운집…펭수도 고인돌 변신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전시장에서 조용히 관람하던 유물들이 두 발로 걸어 나왔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은 ‘국중박 분장놀이’가 결선을 마쳤다.
국중박 분장놀이는 국립박물관 유물로 분장하고 표현하는 참여형 코스프레 문화 행사다.
2024년 ‘국중박이 살아있다’ 행사의 일부로 시작해 올해는 전국 단위로 판을 키웠다. 무려 275팀, 643명이 도전장을 내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날 결선에는 전국 지역 본선을 통과한 25팀이 올랐다. 1권역 10팀과 2~4권역 각 5팀이다.
화려한 분장으로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에 ‘한국판 멧갈라’라는 별칭도 붙었다. 하지만 올해 현장을 보고 나면 굳이 다른 행사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어 보인다. ‘국중박 분장놀이’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국새도, 간돌검도, 서당도 걸어나왔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유물을 고른 이유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분장과 퍼포먼스에 담았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국새에 발이 달렸나’ 팀은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대한제국 국새 ‘제고지보’로 분장했다.
‘국중 밖은 위험해’라는 구호도 내걸었다. ‘발 달린 국새’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물을 대신해 목소리를 냈다.
윤서영 국새에 발리 달렸나 팀원은 “국새 외에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수탈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유물이 많다”며 “국새의 여정과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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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닥터베르와 코스프레 전문가 ‘캡스파'(본명 박도현)는 국보 반가사유상의 은은한 미소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닥터베르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직접 발을 굴려 몸을 돌리는 ‘셀프 회전’도 선보였다.
‘숨 고르는 거북이’와 ‘엉금(金)엉금’은 조선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될 때 시호를 새긴 어보로 각각 변신했다.
농구 선수 출신 패션모델 이혜정은 돌을 갈아 만든 칼 ‘간돌검’이 됐다. 두 팔을 머리 위로 길게 뻗어 간돌검의 뾰족한 칼날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경기 광주시 장애인거주시설 동산원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속 ‘서당’을 통째로 무대 위에 옮겼다. 깜짝 손님으로는 펭수가 ‘고인돌’을 짊어지고 등장했다.
잉어가 뛰어올랐다…대상까지 ‘등용문’
이날 가장 높이 뛰어오른 유물은 잉어였다.
‘백자 잉어모양 연적’으로 분한 대학생 전은슬 씨(22)가 무대 위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전씨는 ‘국중박 분장놀이’ 결선에서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상금은 300만원이다.
전씨가 표현한 작품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조선시대 백자 청화 연적이다. 뛰어오르는 잉어의 생동감이 돋보이는 유물이다.
폭포를 거슬러 오른 잉어가 용이 된다는 ‘등용문’ 고사처럼 잉어 연적도 이날 대상이라는 문턱을 뛰어넘었다.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전씨는 졸업을 앞두고 ‘나를 가장 나답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 무대에 도전했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누운 채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자세를 완성하기 위해 개인 트레이닝(PT)까지 받았다고 밝혀 관람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최우수상인 관장상은 반가사유상으로 분장한 닥터베르(본명 이대양)를 비롯해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을 재현한 ‘국보급사자들’, 청동 방울로 변신한 ‘무연모’ 등 5팀이 받았다.
우수상 5팀과 입선 14팀까지 결선에 오른 25팀 모두 무대 위에서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현장에는 약 3000명이 모여 이들의 무대를 함께했다.
선착순 2천명 마감…3천명 몰린 박물관 앞마당
무대만큼 행사장 곳곳에 마련한 체험 부스도 북적였다. 오뚜기와 정관장, 롯데칠성음료, 한국관광공사 등이 부스를 운영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올해 3회째를 맞은 행사에서 ‘국중박 분장놀이를 칠(Chil)하다’를 콘셉트로 칠성사이다 브랜드 체험 부스를 꾸렸다. 전통 단청 테두리와 나전칠기 자개 장식을 모티프로 삼았다.
한국관광공사는 국내 축제 10개를 소개하는 게임 부스를 운영했다. 참가자가 던져서 나온 축제에 관한 퀴즈를 맞히면 기념품을 주는 방식이다.
환경재단은 유물과 기후 문제를 접목한 ‘기후수능’ 체험 부스를 선보였다.
김영진 환경재단 책임은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교과가 입시 과목에 포함되지 않고 선택과목으로 운영되고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매년 기후수학능력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환경 교과뿐 아니라 사회·과학 교과에 담긴 기후·환경 관련 문제도 함께 출제했다”며 “이번 행사에서는 기후수능 문제 가운데 유물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 옛날 과거시험처럼 재미있게 풀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신청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만큼 행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전국 관람객이 문화유산을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축사에서 “박물관이 오래된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즐길 계기를 만든 데 따른 성과”라며 “‘국중박 분장놀이’는 이미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페스티벌이 됐는데 내년에는 더 성대하게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문서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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