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서점’ 박영아 대표 인터뷰
속초바다 앞 이동식 삼륜차 서점
책은 수단일 뿐 본질은 ‘사람’
장대비가 굵게 쏟아지던 지난 6월. SNS에서 화제를 모은 바다 앞 ‘바퀴 달린’ 서점을 찾아 강원 속초로 향했다. 이 정도 비라면 문을 닫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시 헛걸음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주소를 따라갔다. 이동식 서점인 만큼 목적지는 건물이 아닌 서점이 자리를 잡은 속초 영랑해안길의 한 해변이었다.
비를 맞으며 바다 독서를 즐기는 세발서점 방문객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세발서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예상과 다르게 서점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속절없이 비를 맞는 삼륜차와 우산을 들고 고군분투하는 사장님, 그리고 그 앞 모래사장에는 네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독서를 하고 있었다. 옆 사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빗줄기가 거셌지만 여행객들은 우산을 펼친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폭우 속 독서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세발서점의 어떤 매력이 저들을 폭우 속으로 걸어가게 만들었을까.
SNS 속 사진을 보고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세발서점의 진짜 이야기는 사진 밖에 있었다. 굵은 빗방울 속에서 박영아 세발서점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삼륜차가 서점이 됐다…속초 바다 앞 이동식 책방

세발서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세발서점은 작은 컨테이너를 얹은 삼륜차를 개조해 만든 이동식 서점이다. 분홍빛 삼륜차에 책을 가득 싣고 속초의 한 해변에 자리를 잡았다. 독특한 풍경 덕분에 SNS에서도 입소문을 탔다.
이곳의 가장 큰 묘미는 ‘바다 독서’다. 책을 구매하면 바다 앞 의자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방문객들은 책 한 권을 들고 바다 앞으로 향한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책 속으로 빠져든다.

세발서점 앞 해변. 책을 구매한 이들이 바다 독서를 즐기고 있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하지만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끽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날씨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삼륜차에 실린 책들은 비바람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세발서점은 비가 오는 날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책만 안 젖으면 돼요.” 박 대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책장을 정리했다. 비를 피하기 힘든 바깥쪽 책칸은 이미 비워진 상태였다. 이미 몇번의 우중 영업을 증명하듯 책장 속 일부 책은 책끝이 울거나 구겨져 있었다. 정작 온몸이 흠뻑 젖은 박 대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쫄딱 젖은 채로 책장을 정리하는 박아영 세발서점 대표와 그 뒤를 지키는 방문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비 오는데도 문을 여는 이유요? 그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박 대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손익을 따지기보다 먼 길을 찾아오는 손님과의 약속을 먼저 생각했다.

궃은 날씨에도 찾아온 손님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박 대표는 비를 맞으며 책을 읽는 방문객을 말리기 보다는 “재밌죠?”라며 너스레를 떤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저희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문을 열어요. 개장일도 인스타그램으로 미리 공지하죠. 공지를 보고 찾아오셨는데 비가 온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 말처럼 이날도 굵은 빗줄기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여행객들이 있었다. 책은 비를 맞아 잔뜩 울었지만 그 흔적은 오히려 여행의 훈장처럼 보였다. 한 여행객은 “비를 맞으며 한 시간 정도 앉아 책을 읽었는데 오히려 더 특별한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책은 수단, 본질은 ‘사람’

박아영 세발서점 대표/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비 온다고 불만을 갖기보다 ‘오히려 오늘 오길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계셔서 저도 비 오는 날 계속 문을 열 수 있는 거죠. 같은 상황이라도 태도를 조금만 바꾸면 인생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바람마저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발서점에는 모래알처럼 수많은 에피소드가 쌓인다. 이곳의 주인공은 예쁜 비주얼의 삼륜차나 책장에 꽂힌 책만이 아니다. 진짜 주인공은 박 대표와 여행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박 대표는 특정한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대신 손님이 공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처음 만난 사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덕분에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고, 처음 만난 여행객끼리 친구가 되는 일도 적지 않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비를 맞으며 독서했다는 이유로 모두 친구가 됐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는 박 대표가 거듭 강조한 “책은 수단일뿐 세발서점의 본질은 사람”이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이날도 바다 독서를 마친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빗줄기가 굵어졌다. 더 이상 바닷가에서 책을 읽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잠시 삼륜차의 책장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비가 오자 문을 잠시 닫고 다함께 대피한 모습/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그렇다고 세발서점의 영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박 대표와 방문객들은 근처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젖은 책을 말리고 책에 세발서점 전용 스탬프를 찍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잦아들고 하늘이 갰다. “이것도 추억인데 기념사진이라도 남기자”며 모두가 다시 해변으로 나와 함께 사진을 남겼다. 서점이라기보다 여행지에 가까운 순간이었다.
세발서점을 즐기는 방법
바다 독서 외에 세발서점을 즐기는 방법은 인증샷을 남기는 것이다. 박 대표는 어떤 각도가 가장 예쁜지, 어디에 서야 바다와 서점이 함께 담기는지 알려준다. 여유가 될 때는 직접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푸른 하늘과 분홍색 삼륜차, 황토빛 모래사장이 한 컷에 담겨 엽서 같은 풍경을 만든다.

직접 인증샷을 찍어주는 박 대표(좌)와 그 결과물(우)/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또 다른 재미는 책 큐레이션이다. 작은 삼륜차에 진열할 수 있는 책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기준은 더욱 분명하다. 여행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산뜻한 책들이다.
“대부분 여행 와서 힐링하려고 저희 서점을 찾으시잖아요. 여기까지 와서 무거운 이야기에 압도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책보다는 술술 읽히고 편하게 다가오는 책으로 구성했죠.”
박 대표는 속초까지 와서 바다 앞 독서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평소 힘든 일이 많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읽기 쉬운 책들로 구성한 세발서점의 책장/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바다 독서 중인 한 방문객/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인터뷰 내내 박 대표가 가장 많이 꺼낸 단어는 ‘사람’이었다. 세발서점은 책을 사고파는 서점이지만 결국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작은 삼륜차에는 오늘도 속초 바다만큼 드넓은 이야기들이 넘실거리고 있다.
김지은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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