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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라는 이유로 손 잡으니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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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라는 이유로 손 잡으니 생긴 일

가족은 한 없이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관계는 아닙니다. 뜻이 맞지 않아 싸우는 건 다반사고, 때로는 으르렁대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 가족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둘이나 셋, 그 어떤 숫자도 하나가 되는 기적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집니다.

미얀마 / 사진 = 언스플래쉬

손정서 작가가 글을 쓰고 김찬숙 작가가 그림을 그린 책 ‘우리, 거기도 가 볼래?’는 여든의 엄마와 쉰의 딸이 10년에 걸쳐 세계를 걸으며 서로의 인생 동반자가 돼 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김지영 작가의 책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는 엄마와 쌍둥이 두 아들이 6주간 낯선 땅에 뿌리내리며 함께 성장하는 기록을 실었습니다.

두 책은 ‘가족과 함께 떠나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는 여행’을 다룹니다. 모두 완벽한 여행이 아니라 실수와 한계까지 끌어안으며 가족이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우리, 거기도 가 볼래?

글 손정서·그림 김찬숙 ㅣ 이담북스

어둠이 걷히기 전, 미얀마 바간의 새벽 공기는 서늘했다. 수천 개 파고다(불탑)의 윤곽이 하나둘 떠오르고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번졌다. 그 풍경 앞에 일흔의 엄마가 말앖이 서 있었다.

2016년 1월. 딸이 건넨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엄마, 나랑 둘이서 미얀마 가 볼래?” 그때만 해도 평생 단 한 번뿐인 모녀 여행이라 믿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질문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단 한 번이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나? 또 가도 되잖아.’ 그 물음이 결국 열 해를 데려왔다.

손정서 작가의 책 ‘우리, 거기도 가 볼래?’는 여든을 넘긴 엄마와 쉰을 맞은 딸이 두 발로 걸어온 세계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는 30년째 서울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살아온 사람이다. 2024년에는 1년간 무급 휴직까지 감행했다. 엄마와 세상 끝까지 걸어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림과 만화는 여행길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엄마 김찬숙이 그렸다. 카메라를 잡았던 손으로 이번엔 연필을 쥐었다.

미얀마 / 사진 = 언스플래쉬

책의 첫 번째 미덕은 엄마의 변화다. 일분일초 빽빽한 일정에 쫓기는 패키지여행이 익숙했던 엄마는 딸의 손에 이끌려 자유여행의 세계로 들어선다.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는 해가 질 때까지 머물면 그만이다.

미얀마 우베인 다리에서 해가 떨어지기를 묵묵히 기다리던 엄마. 낯선 문자뿐인 메뉴판을 뒤적여 기어이 감자부침을 찾아내던 엄마. 시칠리아의 골목길을 딸보다 먼저 걷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들과 어깨동무로 사진을 찍던 엄마. 풍경을 구경하던 사람이 어느새 여행의 당당한 주인공이 돼 있다.

책 속의 문장 하나가 오래 남는다. 올라가는 데만 40분이 걸린다는 딸의 걱정에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천천히 쉬엄쉬엄 올라가 보자.” 급할 것 없는 여행이었다. 보고 느끼며 가면 그만이었다.

물론 여행이 늘 가볍지만은 않았다. 라트비아 투라이다 성의 가파른 계단 앞에서, 또 안개 낀 페트라 협곡의 미끄러운 빗길 위에서 엄마의 몸은 예전 같지 않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래도 책은 한계를 아쉬워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비어 버린 자리에 연륜과 지혜가 어떻게 들어차는지를 가만히 보여 준다.

요르단 페트라 / 사진 = 언스플래쉬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지 못해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풍경에 만족할 줄 아는 여유와 높은 곳이 무서워도 일출 한 번을 보겠다고 새벽 공기를 가르는 열정 그리고 몰타 고조섬의 가파른 시타델라 언덕을 딸보다 한참 앞서 올라 손을 흔드는 장면에서 책 제목이 던진 질문의 답이 있다. 늙어 가는 몸과 달리 마음은 얼마든지 다시 젊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젊어진 마음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이 책은 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 서쪽 우주피스에서는 엄마가 헌법 조항 하나를 골라 딸에게 건넨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지친 딸에게 “실수해도 당당하라”는 격려에 딸은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걸음을 살피며 계단마다 손을 내밀며 보답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두 세대의 여성은 낯선 길 위에서 인생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거듭난다.

베들레헴의 장벽 앞에서도, 텔아비브 해변의 일몰 앞에서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다. 발트해의 투명한 일렁임과 아이슬란드의 맑은 밤하늘을 춤추는오로라 등 바라보는 풍경은 달라도 곁에 선 사람은 같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풍경보다 사람이 선명해진다.

책은 모두 여덟 개의 장으로 짜였다. 미얀마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발트 3국, 이스라엘과 요르단, 튀니지와 몰타, 시칠리아를 지난다. 이어 그리스,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조지아,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거쳐 대미를 파타고니아에서 맺는다. 지도 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들이지만 책 안에서는 한 줄의 길로 이어진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 사진 = 언스플래쉬

그 끝에서 가장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파타고니아 엘 찰텐에서 젊은 배낭여행객(백패커)들이 능선에서 마을 어귀까지 후드득 뛰어 내려올 때 엄마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스친다. ‘10년 전에 왔더라면 호수쯤은 함께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저자의 고백은 여행은 미루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러 준다.

마지막 장면은 우수아이아를 떠나는 택시 안이다. 창밖을 한참 내다보던 엄마가 “아디오스, 우수아이아”라고 인사한다. 운전기사가 웃으며 고쳐 준다. 영원한 작별을 뜻하는 ‘아디오스’ 대신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아스타 루에고’라고 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이 인사가 엄마와 딸이 아니라 읽는 이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

김지영 ㅣ 미다스북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바닥은 차가웠다. 불 꺼진 대합실 한 편에 세 식구가 쪼르르 누웠다. 배낭을 베개 삼은 쌍둥이 형제는 이내 코를 골고, 엄마는 천장만 올려다봤다. 낯선 나라에서의 첫 밤이 이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힘들거나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웃음부터 났다.

공항 노숙에서 출발해 6주 동안의 해외 체류기를 기록한 책 ‘엄마와 쌍둥이, 말레이시아에 던져지다’는 ‘매일 사고 치고 매일 자란 6주 해외 생존기’라는 부제처럼 시종일관 소란스럽다. 책장을 넘기면 그 왁자지껄함이 곧 매력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저자 김지영은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속도에 익숙한 삶을 살았다. 코로나 이후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의 삶을 살면서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마음을 먹는다. 곧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사춘기의 초입의 두 아들과 스무 살 독립 전까지 해외에서 살아 볼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를 고민했다. 그 계산 끝에 손에는 어느새 비행기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 사진 = 언스플래쉬

저자는 딱 6주로 계획을 세웠다. 그 답은 명쾌했다. 4주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6주라면 첫 한 주는 이래저래 알아 가다 흘러가고, 이후 4주는 적응하며 즐기고, 마지막 한 주는 아쉬움이 남지 않게 불태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행자의 시간과 생활자의 시간 사이 딱 그 어디쯤으로 6주는 적절했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이면서 생활 설명서다.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전제로 가볍게 떠났지만 6주 동안은 낯선 땅에 잠시나마 뿌리를 내리고 ‘그곳만의 일상’을 쌓아 간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어학원과 숙소를 구하고 매일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주말이면 버스로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로 건너간다. 싱가포르가 내 집 앞마당이 되는 시간이다.

목차만 훑어도 하루하루의 온도가 전해진다. ‘행운의 눕코노미’, ‘세계적인 기업 그랩과 맞다이’, ‘키즈카페형 어린이 영화관’, ‘시스템이 잠겼습니다’, ‘설거지를 하는데 발이 젖는다’ 등 쉬어갈 타선이 없다. 레고랜드 연간회원권을 두고는 “뽕 뽑기는 글렀다!”라고 했다가 3주 뒤 “진작 올걸! 뽕 뽑았다”로 돌아선다.

말레이시아 레고랜드 / 사진 = 언스플래쉬

말라카에서는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을 만나고 반딧불이 날아드는 밤에는 말레이 민속 체험도 한다. 야쿤과 토스트박스 사이에서 벌인 토론은 이 가족의 첫 이틀을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장면이다.

여행이 늘 반짝이지만은 않았다. 4성급이라 믿고 예약한 호텔은 사진과 달리 “낡았고요, 늙었습니다”를 외치게 했다. 열이 펄펄 끓는 아들을 데리고 말레이 현지 병원을 찾아가던 날도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저자가 ‘멍청 비용’이라 부르는 값을 치른 날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책은 실수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는 콘텐츠, 시행착오는 성장의 증거라고 말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결제하기, 식당에서 스스로 주문하기, 지도를 보며 길 찾기 등은 물론이다. 엄마가 대신해 주던 일들을 아이들이 하나씩 가져갈 때는 놀라우면서 감동적이다. 엄마의 눈에 비친 아이들은 엉뚱하고 당황스럽지만 그 사이에는 소소하지만 기특한 순간이 끼어 있다.

국경을 버스로 넘던 어느 날에는 아이들이 “나라 사이도 이렇게 쉽게 오가는데 왜 한반도는 못 갈까?”라고 물었다. 여행이 아이들의 질문을 샘 솟게 한 것이다. 넘지 못할 벽처럼 보이던 두려움도 버스로, 걸음으로 넘을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운다. 엄마가 얻은 것도 있다. 아이와 함께라서 더 강해졌다는 고백과 재취업을 향한 용기, 그리고 단단해진 자기효능감이다.

싱가포르 / 사진 = 언스플래쉬

여행 책에 먹는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이 책에도 바쿠테와 딤섬, 오리엔탈 코피티암(커피와 토스트를 즐기는 현지 식당), 부킷인다 수요 야시장까지 입이 즐거운 날들이 이어진다. 저자가 꼽은 ‘원픽’은 단연 아보카도 주스다. 경험해 본 적 없는 형광펜 색을 띤 주스다.

망고는 흔하지만 망고주스는 ‘레어템’이라는 문장에서는 열대 과일 가게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과일 잭푸르츠와 인사하던 날의 표정도 떠올리게 된다.

현지 미용실, 스타벅스와 현지 주스커피 가게 비교, 싱가포리언들의 성지로 불리는 미드밸리몰까지 책 속의 장소는 관광 명소가 아니라 이 가족의 단골집이 돼 간다. 일몰 크루즈 위에서 두 나라 사이를 가르는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밤을 보내는 장면은 6주의 마침표로 더없이 어울린다.

말레이시아 / 사진 = 언스플래쉬

실용서로서의 쓸모도 만만치 않다. 어학원과 숙소 고르는 법, 통신과 환전, 교통 선택법은 물론, 버스로 국경을 넘는 절차까지 꼼꼼히 담았다. 부록에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기본 정보, 국경 넘기 팁, 준비물 체크리스트, 6주 살기 비용표가 실려 있다.

저자는 책 끝에서 “부끄러움은 내 몫으로 남기고” 용기 내어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적었다. 그 부끄러움 덕분에 독자는 용기 한 스푼을 얻는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함께 버틴 매일이 가족을 바꿨다는 이야기는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까짓것, 나도 해보지 뭐!”라는 힘을 건넨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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