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간을 읽는 여행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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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간을 읽는 여행에 담긴 의미
수백 수천년 전 유적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도 담겨있지만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당시의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여행지에 가서 유명한 건물을 봤을 때보다 때로는 낯선 곳에서 우연히 접한 분위기가 추억으로 오래 남을 때도 있습니다.
황윤 작가의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복궁 여행’은 문헌과 유물을 통해 사라진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복원하며 익숙한 궁궐을 낯설게 바라봅니다. 이창근 작가의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는 종묘, 경주, 산사 등을 걸으며 유산에 겹쳐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감각으로 읽어냅니다.
저자 모두 유적을 빠르게 확인하는 대신 그 공간에 쌓인 시간을 상상하고 느낄 때 비로소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여책저책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시간을 읽는 여행에 대해 만납니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복궁 여행
황윤 ㅣ 책 읽는 고양이
서울에서 가장 익숙한 궁궐을 꼽으라면 경복궁을 빼놓기 어렵다.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 앞에 서고, 경회루를 바라보며 사진 한 장을 남기는 일은 서울 여행의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복궁이 조선시대의 경복궁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사학자 황윤이 쓴 책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복궁 여행’은 익숙했던 궁궐을 낯선 시선으로 다시 걷게 한다. 저자는 오늘의 경복궁에서 출발해 임진왜란 이전 조선 최고 전성기의 경복궁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경복궁에는 크게 세 가지 시간이 겹쳐 있다. 조선 전기 왕조의 중심이었던 시기, 임진왜란 이후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시기, 그리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운 시기다. 오늘날의 경복궁은 기본적으로 고종 때 재건된 궁궐이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펼쳐진 건물과 공간만으로는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온전히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 간극을 문헌과 회화, 예술품,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하나씩 비교하며 좁혀간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대신 ‘그때 경복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흩어져 있는 단서를 맞춰가며 사라진 궁궐의 모습을 복원한다. 고고학적 증거를 따라 과거의 공간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조선의 궁궐을 거닐게 된다.
특히 책이 주목하는 시기는 세종대왕 시기다. 세종에게 경복궁은 단순한 왕의 거처가 아니었다. 정치와 과학, 종교와 학문, 의례와 국가 운영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궁궐의 건물과 배치 하나에도 왕권과 국가 질서를 세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저자는 세종이 경복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피면서 궁궐의 공간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본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은 훈민정음 창제 장소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한글 창제와 집현전을 연결해 생각하지만 저자는 한글 창제가 왕실의 은밀한 프로젝트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작업이 이뤄진 장소로 국왕의 개인적 공간인 편전을 제시한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새로운 공간적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세자의 공간인 동궁을 둘러싼 이야기도 흥미롭다. 세종은 적장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의지가 강했고 세자 문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경복궁 안에 대리청정 공간인 계조당을 마련했다. 현재 복원된 계조당과 세종 당시의 모습이 달랐다는 사실도 짚는다. 당시 계조당은 남쪽이 아닌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군주만이 남쪽을 바라보고 신하를 맞을 수 있다는 대신들의 논리가 공간의 방향까지 결정했던 것이다.
궁궐을 걷는 재미는 건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월오봉도의 변천 과정, 조선 전기와 후기 궁궐 지붕의 차이, 청기와의 흔적, 근정전 월대와 전돌, 경회루의 변화까지 경복궁 곳곳의 디테일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조선 전기 회화를 통해 당시 궁궐의 지붕 모습을 추적하는 방식은 현재의 경복궁을 과거와 비교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조선 전기 경복궁이 약 390여 칸 규모였던 데 비해 고종 때 재건된 궁궐은 7225칸에 이르렀다는 사실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진 궁궐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은 궁궐 밖으로도 시선을 넓힌다. 오늘날 광화문광장과 종로 일대가 조선시대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육조거리는 어떻게 조성됐는지를 살피며 경복궁을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일부로 바라본다.
이 책의 매력은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만드는 데 있다. 광화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향하는 평범한 동선도 책을 읽고 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건물과 달라진 방향, 변해버린 공간까지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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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이 말하는 경복궁 여행은 과거의 건물을 확인하는 여행이 아니다. 오늘의 풍경 위에 겹쳐진 수백 년의 시간을 읽는 여행이다. 궁궐을 걷다가 문득 ‘이곳에서 세종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건물은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까’라고 질문하는 순간, 경복궁은 박제된 문화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
이창근 ㅣ 미다스북스
어느 골목에서 마주한 빛, 오래된 돌담을 따라 걸을 때 느꼈던 분위기, 잠시 머물렀던 도시의 공기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 오히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책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어떤 도시는 사람을 머물게 하고, 어떤 도시는 스쳐 지나가게 하는가. 20년 넘게 문화유산 현장을 걸어오며 미디어아트 디렉터이자 예술·기술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 이창근은 세계유산을 목록이나 지식이 아니라 ‘도시를 걷는 경험’과 ‘기억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예술경영학박사이기도 한 저자는 문화유산과 도시, 기술과 사람이 만나는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왔다. 2006년부터 문화유산 활용 사업과 전통문화 콘텐츠 기획, 궁궐과 조선왕릉, 종묘대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이번 책은 그런 현장 경험과 글쓰기가 켜켜이 쌓여 나온 결과물이다. 전작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이 유산을 도시 전략과 경험 설계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오래된 장소를 직접 걸으며 그곳의 시간과 도시의 표정을 읽어낸다.
책은 크게 다섯 갈래로 펼쳐진다. 첫 번째는 종묘와 창덕궁, 성곽을 통해 세계유산이 도시의 얼굴이 되는 과정을 살핀다. 유산은 박물관 안에 고립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도시와 연결될 때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창덕궁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성곽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유산이 도시의 공간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경주와 백제, 역사마을과 고분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특정 건축물 하나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간으로 읽힌다. 오래된 마을과 무덤, 돌과 길은 과거의 흔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세계유산은 그렇게 도시의 표정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다.
세 번째는 산사와 서원,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불국사를 통해 고요와 사유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에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소들이다. 하지만 천천히 걷고 머무르면 건축과 자연, 빛과 침묵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감각이 다가온다. 저자는 세계유산을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짚는다.
네 번째에서는 제주와 갯벌, 반구천 암각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오래된 기억을 만난다. 인간이 남긴 흔적뿐 아니라 땅과 바다, 자연의 시간 역시 유산이 될 수 있다. 특히 갯벌처럼 아주 느린 속도로 변화하는 공간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온 시간의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오래된 장소를 걷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살아온 자연의 리듬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은 ‘세계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저자는 세계유산을 많이 가진 나라와 세계유산을 경험하게 하는 나라는 다르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유산의 숫자나 이름을 늘어놓는 데 있지 않다. 그 장소에 담긴 시간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직접 걷고 머물며 기억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책은 세계유산을 공부하기 위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여행의 속도를 늦추게 한다. 유명한 명소를 빠르게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대신 그곳을 천천히 걷고 바라보며 질문하게 한다. 종묘와 경주, 산사와 제주를 이미 다녀온 사람에게도 익숙한 장소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기회를 준다.
결국 세계유산을 읽는다는 것은 도시를 다시 걷는 일이다. 그리고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그곳에 쌓인 시간과 사람의 기억을 만나는 일이다. 이 책은 오래된 장소가 왜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어떤 기억으로 남길 것인지 조용히 묻는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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