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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누군가에게는 이방인,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리’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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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책저책] 누군가에게는 이방인,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리’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해외여행이나 자신이 거주하지 않는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여행자에 머물지 않고 한 도시에 깊이 뿌리내려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곳의 문화와 삶을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죠. 여책저책은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이를 만납니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힘들었을 시간이 이제는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삶으로 바뀌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요.

책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베이징 이야기’는 문화예술 연구자의 시선으로 베이징의 일상과 사람들, 도시의 변화를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책 ‘베를린 엄마는 왜 바리깡을 들었을까?’는 이방인 엄마로서 베를린에 정착하며 겪은 성장과 회복의 시간을 담아냈습니다. 두 저자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에게 낯선 공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과 다시 시작할 용기에 대해 살펴봅니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베이징 이야기

배혜은 | 한국학술정보

낯선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관광명소를 도장 찍듯 훑어보는 여행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아침 출근길의 표정, 골목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대화, 유행하는 음료 한 잔에 담긴 취향과 시대정신 같은 것들 이 그것이다. 책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베이징 이야기’는 바로 그런 느낌을 담았다. 흔히 중국을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정치와 경제, 외교와 산업 대신 문화와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오늘의 중국을 들여다봤다.

저자 배혜은은 10여 년간 베이징에 머물며 문화산업을 연구해 온 문화예술 연구자다. 중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지 문화예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해 왔다. 책은 여행 에세이 형식을 취하지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오랜 시간 한 도시에 뿌리내린 사람이기에 포착할 수 있는 풍경과 변화, 그리고 문화적 결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1장 ‘베이징 일상’에서는 베이징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유학생의 하루가 펼쳐진다. 연구와 생활 사이에서 방황하고 성장하는 과정, 논문에 지친 날 캠퍼스를 산책하며 위안을 얻었던 순간들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거대한 중국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일상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베이징 산책’은 도시를 가장 깊게 이해하는 방법이 결국 걷기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통이라 불리는 베이징의 골목길과 백탑사 주변 카페들, 일반 관광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베이징대와 칭화대의 박물관과 미술관까지 저자는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표정을 읽어낸다. 유명 관광지보다 생활 속 공간에 더 많은 시선을 머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3장과 4장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버려진 철강단지가 동계올림픽 경기장으로 재탄생한 수강원, 방직공장이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변신한 랑위안 등은 오늘날 중국 문화산업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저자는 이러한 공간 변화 속에서 예술과 산업, 도시재생이 어떻게 결합하는지 생생하게 설명한다.

트렌드를 다룬 4장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밀크티 브랜드 차지(CHAGEE), 중국 음료 브랜드 헤이티와 글로벌 명품 브랜드 및 예술가들의 협업, 그리고 팝마트가 단순한 피규어 회사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 IP로 성장하는 과정까지 소개한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상품 자체가 아니다. 중국 젊은 세대가 무엇에 열광하고 어떤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소비하는지, 그리고 문화가 어떻게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지다. QR코드 하나로 모든 소비가 이뤄지는 사회에서 예술 역시 더 이상 미술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음료 브랜드와 협업하고 쇼핑몰 한가운데 설치되며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마지막 장 ‘베이징 속 우리’는 더욱 따뜻하다. 중국 대학 강의실에서 함께 본 이창동 감독의 영화, 중국 젊은 세대가 사랑하는 K-캐릭터, 중국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한국 그림책 이야기까지 한국과 중국이 문화로 연결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중국을 설명하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저자는 오랜 시간 살아온 도시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신이 보고 느낀 풍경을 조용히 들려준다. 중국을 이해하고 싶지만 정치와 경제 기사만으로는 늘 부족함을 느꼈던 독자라면 베이징 여행을 준비하면서 조금 더 깊은 풍경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돼줄 것이다.

베를린 엄마는 왜 바리깡을 들었을까?

박하 | 미다스북스

여행지로서의 독일 베를린은 늘 낭만적으로 소비된다. 자유로운 예술가들, 개성 넘치는 거리 문화, 오래된 역사와 현대 감성이 공존하는 도시. 하지만 누군가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관광객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생존의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책 ‘베를린 엄마는 왜 바리깡을 들었을까?’는 그런 현실에서 출발한다. 독일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두 아이를 키우며 베를린에 정착해야 했던 한 한국인 엄마의 고군분투 이야기다. 화려한 해외 생활도, 성공담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낯선 도시에서 무너지고, 버티고, 다시 일어서는 평범한 한 사람의 성장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저자 박하는 서울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 결혼과 육아를 계기로 경력 단절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2018년 베를린으로 이주하면서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문제는 새로운 출발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고, 병원 문턱은 높았다. 아이가 아파도 소아과 예약조차 쉽지 않았고, 계산대 앞에서는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서 있어야 했던 시간들은 저자의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책 제목 속 ‘바리깡’은 그런 시절의 상징이다. 베를린 생활에 지쳐가던 어느 날, 저자는 욕실에서 머리를 밀어버린다. 특별한 결심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필요했다. 벽을 넘을 힘은 없었지만, 머리카락 정도는 스스로 잘라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삭발은 저자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심하고 확실한 반란’이 됐다. 책 속 글귀가 제대로다. “잘려 나간 건 머리카락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해외 이주를 인생의 새로운 기회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이면의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베를린의 삶은 때로 무대 위에 억지로 세워진 배우 같았고, 관객은 끊임없이 “나인(Nein)”을 외쳤다. 병원 예약도, 행정 업무도, 일자리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이 우울한 고생담으로만 흐르지 않는 이유는 저자 특유의 유머와 담담함 때문이다.

저자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신 주방 타이머를 10분에 맞춘다.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고, 포스트잇에 독일어 단어를 적어 집안 곳곳에 붙인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는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던 자신에게 “딱 10분만 하자”고 말한다.

그 작은 실천들은 결국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인스타툰을 그리기 시작했고, 독일어 자격증을 취득했다. 마침내 시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 책은 거대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작은 행동들이 쌓여 삶을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육아에 대한 시선이다. 저자는 독일과 한국의 육아 문화를 비교하며 두 사회가 가진 서로 다른 가치관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한국에서는 방임처럼 보이는 일이 독일에서는 존중으로 받아들여지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 역시 조금씩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 ‘나’ 사이의 균형도 다시 고민하게 된다. 많은 여성들이 육아 이후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진다. 저자 역시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책은 엄마라는 역할과 개인의 정체성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완벽한 균형은 어렵더라도 두 역할이 서로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독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해외 이주자가 아니어도 좋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사람,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두려운 사람, 낯선 환경 앞에서 작아진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면 삭발했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어깨를 넘어선다. 머리를 민 어느 겨울밤의 작은 반란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자라게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용기를 전할지 모른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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