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같은 도쿄, 다른 도쿄,
익숙한 도쿄, 낯선 도쿄…진짜 도쿄의 모습은?
어느 도시에 머무는 일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일일테죠. 다만 그곳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공간도, 시간도 바라보는 것이 달라질 겁니다.
일본 도쿄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도쿄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에 있습니다. ‘도쿄의 하늘은 하얗다’의 저자는 낯선 도시에서 성장한 한 청춘의 삶과 감정을 따라가고요. ‘도쿄 킷사텐 도감’의 저자는 오래된 킷사텐을 통해 도쿄의 시간을 기록합니다.

일본 도쿄 / 사진 = pexels
여책저책은 도쿄라는 도시를 더 깊고 조용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두 권의 책을 만납니다.
도쿄의 하늘은 하얗다
오다윤 | 세나북스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언제나 용기를 요구한다. ‘도쿄의 하늘은 하얗다’는 그 용기를 품고 도쿄로 향했던 한 청춘이 그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처음엔 마냥 낯설기만 했던 도시가 다섯 해의 시간을 지나 익숙한 추억이 되고, 결국 다시 돌아와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장소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차분히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한 사람이 도시와 맺은 관계의 기록이자 청춘의 자서전에 가깝다.
저자 오다윤에게 도쿄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하얀 도화지이자,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하얀 하늘을 닮은 도시다. 학생과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보낸 젊은 날의 시간은 도쿄라는 공간 위에 고스란히 겹쳐진다.

시부야, 기치죠지, 마루노우치, 신주쿠, 긴자, 롯폰기, 오다이바, 아사쿠사 등 익숙한 장소들은 관광 명소가 아니라 저자의 감정과 기억이 스며든 삶의 무대가 된다. 퇴근길에 올려다본 도쿄 타워, JR선을 타고 지나던 밤의 신주쿠, 화려함 속에서 돈의 무게를 처음 실감했던 긴자의 거리까지, 도시의 풍경은 언제나 저자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도쿄를 ‘사는 도시’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네즈 미술관과 신주쿠 교엔, 요요기 공원, 이노카시라 공원 등 도심 속 자연은 바쁜 일상 속에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쉼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가마쿠라와 에노시마, 하야마, 아타미로 이어지는 근교 여행 이야기는 도쿄라는 거대 도시의 바깥에서 만나는 또 다른 일본의 얼굴을 보여준다. 바다와 온천, 오래된 건축물과 조용한 골목들은 청춘의 열기와 어우러져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미식과 커피, 디저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미슐랭과 타베로그로 검증된 맛집부터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녹아 있는 커피 문화, 말차의 깊은 맛까지, 도쿄의 식문화는 삶의 즐거움이자 위로로 그려진다.

여기에 일본어 공부와 취업, 회사 생활, 프리랜서로의 전환 등 실제로 일본에서 살아보며 체득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해져 책은 감성 에세이를 넘어 실질적인 참고서 역할까지 해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솔직한 자기 성찰이다. 외국어의 한계 앞에서 느낀 좌절, 회사라는 틀 안에서의 답답함, 사랑과 이별을 통해 배운 감정의 깊이, 그리고 스스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꾸밈없이 드러난다. 도쿄는 저자를 빛나게만 한 도시가 아니라, 흔들리고 고민하며 단단해지게 만든 공간이었다.

‘도쿄의 하늘은 하얗다’는 도쿄를 이미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책이고, 도쿄에 무심했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여행과 일상, 꿈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의 무대를 찾고자 했던 한 청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언젠가 자신만의 하늘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도쿄 킷사텐 도감
엔야 호나미 지음, 서하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도쿄 킷사텐 도감’은 일본의 복고풍 카페인 킷사텐을 소개하는 책임과 동시에 한 도시의 시간을 기록한 공간 아카이브다. 목욕탕 도감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을 선보였던 엔야 호나미는 이번 책에서 도쿄와 근방에 자리한 킷사텐 18곳을 건축가의 눈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킷사텐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 그리고 일본 특유의 미감이 켜켜이 쌓인 생활의 무대다. 이 책은 그 무대를 한 장의 그림과 한 편의 이야기로 정성껏 펼쳐 보인다.

가장 큰 특징은 아이소메트릭 기법으로 구현한 공간 도면이다. 특정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는 벽의 두께, 가구의 배치, 카운터 안쪽의 동선, 조명의 각도까지 빠짐없이 담겨 있다.
건축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 실측하고, 수백 장의 사진과 메모를 바탕으로 완성한 도면은 단순한 일러스트를 넘어 ‘읽는 공간’이 된다. 깊게 파인 소파의 흔적, 오래된 타일의 질감, 손님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의 위치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 킷사텐이 이 모습일 수밖에 없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책에 소개된 킷사텐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클래식 음악 감상에 특화된 명곡 킷사, 비엔나커피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가게, 70년 넘게 영업을 이어온 노포,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 공간까지, 각각의 킷사텐은 하나의 세계처럼 존재한다.
여기에 가게 주인의 철학과 손님들의 오래된 습관, 벽에 남은 손자국과 소품에 얽힌 사연이 더해져 공간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관광객이 아닌 단골의 시선으로 킷사텐에 앉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또한 책은 킷사텐을 ‘머무르는 장소’로 다시 정의한다. 아침의 모닝 세트, 점심의 식사 메뉴, 저녁의 음악 감상과 대화까지 이어지는 하루의 흐름 속에서 킷사텐은 쉼과 일상,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빠른 소비를 전제로 한 카페 문화와 달리, 이곳에서는 오래 앉아 있어도 괜찮고, 침묵조차 환영받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여행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안내서다.

한국어판에는 각 킷사텐의 구글 맵스 검색어와 SNS 정보, 위치를 바로 저장할 수 있는 지도까지 수록해 실용성을 더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정보보다 관찰에 있다. 한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얼마나 세심하게 기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커피 향이 배어 있는 도쿄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독자에게, 가장 조용하고 깊은 여행을 제안한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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