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북부의 아리(Ari)는 태국 고위 관료와 자산가들이 터를 잡았던 유서 깊은 주거 지역이다. 대형 개발이 제한된 덕에 1970년대 단독 주택과 정원이 그대로 살아있다. 요즘은 방콕의 젊은 건축가와 크리에이터들이 낡은 가옥을 뜯어고쳐 웰니스 공간과 스페셜티 브랜드를 채워 넣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아리 코스를 소개한다.
랜드하우스 베이커리(Landhaus Bakery)
아침은 랜드하우스 베이커리에서 시작해볼까. 랜드하우스 베이커리는 아리의 한적한 이면도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정원형 크래프트 베이커리다. 오스트리아·독일식 제빵 기술을 바탕으로 오래된 목조 가옥을 개조했다. 낡은 목재 기둥과 붉은 벽돌 마감 사이로 유럽식 대형 제빵 오븐이 들어서 있다. 묘하게 잘 어울린다.
천연 발효종과 유기농 호밀로 매일 새벽 구워내는 사워도우 브레드와 독일식 프레첼이 대표 메뉴다. 고소한 무염 버터와 제철 과일 수제 잼을 얹어 아열대 식물이 그늘을 드리운 야외 테라스에서 먹는 브런치는 방콕의 속도를 잠시 잊게 만든다.
실제 아리 주민들과 이 동네에 사는 유럽계 크리에이터들이 아침마다 책을 펼치고 앉는 공간이다.
18 Soi Phahonyothin 5, Khwaeng Samsen Nai, Khet Phaya Thai, Krung Thep Maha Nakhon 10400 태국
옐로우 레인(Yellow Lane)
베이커리에서 빵 한 조각을 다 먹었다면 두 블록만 걸어가면 된다. 옐로우 레인은 1970년대 2층짜리 단독 저택과 그 주변을 빼곡하게 감싼 아열대 정원을 코워킹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인위적인 콘크리트를 드러내는 대신 백색 외벽과 통창을 택했다. 실내와 정원 사이 경계가 흐릿하다. 자연 채광이 내부 깊숙이 파고든다.
방콕의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 바람이 아닌 수십 년 된 열대 나무 그늘이 공간 전체를 채운다. 나무와 바람 소리가 인테리어의 전부다. 주말이면 방콕의 디지털 노마드와 로컬 아티스트들이 노트북을 열고 저마다 아이디어를 교환한다. 아열대식 웰니스가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앉아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한다.
2, 92 Soi Phahon Yothin 5, Phaya Thai, Khet Phaya Thai, Krung Thep Maha Nakhon 10400 태국
옹통 카오소이(Ong Tong Khao Soi)
옐로우 레인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점심 장소가 나온다. 방콕에서 똠얌꿍과 팟타이만 먹었다면 태국 음식의 절반도 못 본 셈이다.
옹통 카오소이는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정통 음식 문화를 아리의 좁은 로컬 가옥 안으로 끌어들인 미쉐린 비브구르망 식당이다. 낡은 숍하우스 구조를 그대로 두고 목재 벽면과 세련된 타이 폰트 그래픽으로 마감했다. 오래된 골목의 아늑함과 현대적인 정갈함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한다.
대표 메뉴는 카오소이 가이(Khao Soi Gai)다. 닭다리가 통째로 들어간 옐로우 커리 베이스 국수로 코코넛 밀크의 고소함과 북부 향신료의 알싸한 풍미가 에그 누들에 깊이 배어 있다. 위에는 바삭하게 튀긴 국수 고명이 올라가 부드러움과 바삭함을 동시에 준다. 국물 없이 볶아낸 카오소이 한(Khao Soi Haeng)도 놓쳐선 안 된다. 면발의 쫄깃함에 고기 소스의 감칠맛이 더해진다.
함께 본 기사: 고수온에 귀해진 전어…어획량 급감에도 전어축제는 열린다[제철축제]
31 Phahonyothin Soi 7, Phaya Thai, Khet Phaya Thai, Krung Thep Maha Nakhon 10400 태국
방콕 예술문화센터(Bangkok Art & Culture Centre)
방콕 한복판에 거대한 백색 원통형 건물이 있다. 태국 건축 사무소 로버트 G. 부이앤아소시에이츠(Robert G. Boughey & Associates)가 설계한 방콕 예술문화센터다. 외관의 매끄러운 백색 콘크리트부터 내부의 나선형 경사로 동선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아시아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현대 건축이다. 1층부터 9층까지 이어지는 수직 공간 중앙으로 거대한 자연 채광 창이 빛을 끌어들인다. 경사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는 동안 공간의 조형미와 전시를 동시에 눈에 담게 된다.
고전 유물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아니다. 지금 방콕에서 가장 앞선 현대 미술가와 사진작가 디자인 크리에이터들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와 시각 예술 트렌드를 가장 큰 스케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7층과 8층 9층의 주 전시실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정치 환경 젠더 서브컬처를 다루는 국제급 현대 미술 기획전과 비엔날레 수준의 설치 예술이 거대한 백색 공간 안에 펼쳐진다.
전시만 보고 나오기엔 아깝다. 나선형 통로를 따라 독립 예술 서점과 아티스트 수공예 주얼리 쇼룸 로컬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숍 크래프트 스페셜티 에스프레소 바가 층마다 촘촘히 자리한다. 방콕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작업물을 직접 손에 들고 골라볼 수 있다.
939 Rama I Rd, Khwaeng Wang Mai, Pathum Wan, Krung Thep Maha Nakhon 10330 태국
통요이 카페(Thongyoy Cafe)
통요이 카페는 들어서는 순간 압도당하는 공간이다. 벽면 전체를 뒤덮은 입체적인 월플라워 아트와 황동 메탈릭 집기들이 눈을 먼저 사로잡는다. 전통 타이 실내 양식과 현대적인 그래픽 레이아웃을 정면충돌시킨 공간이다. 사진 찍으려고 만든 곳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깊다.
태국 전통 디저트인 카놈 타이(Khanom Thai)를 현대적인 구움과자와 타르트로 재해석해 황동 식기에 서빙한다. 필수 메뉴는 전통 디저트 5종과 따뜻한 차가 함께 나오는 카놈 타이 세트(Khanom Thai Set)다. 찹쌀 경단에 코코넛 가루를 묻힌 카놈 톰(Khanom Tom)과 꽃 모양으로 빚은 전통 과자들을 맛볼 수 있다. 코코넛 크림의 부드러움과 은은한 단맛이 살아있는 타이 티 케이크(Thai Tea Cake)는 꼭 함께 시켜야 한다. 박물관에서 눈으로 봤던 태국 전통 미학이 디저트라는 형태로 입 안에서 완성된다.
24, 4 Soi Ari 4 Nua, Phaya Thai, Khet Phaya Thai, Krung Thep Maha Nakhon 10400 태국
더블유더블유에이 추즈리스(WWA Chooseless)
아리에서의 하루는 더블유더블유에이 추즈리스(WWA Chooseless)에서 마무리하자. 이곳은 방콕의 하이엔드 패션 레이블 WWA와 레어 가구 컬렉터 Chooseless가 합작해 만든 복합 콘크리트 콘셉트 스토어다. 카페로 분류돼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거친 노출 콘크리트 뼈대와 기하학적 철제 구조물 사이로 전 세계에서 수집한 아방가르드 가구들이 충돌하는 하이엔드 해체주의 패션 쇼룸이자 시각 디자인 아카이브다.
비대칭 실루엣의 WWA 디자이너 의류와 독특한 액세서리를 둘러보며 독립 매장만의 과감한 브랜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곳의 정체성을 담은 대표 메뉴는 WWA 브라우니(WWA Brownie)다. 다크 초콜릿의 묵직함과 끈적한 질감이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운 공간감과 맞아떨어진다. 크림치즈를 얹은 시그니처 베이킹 타르트도 함께 시킬 것을 권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정밀하게 추출된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며 디자이너 체어에 앉아 공간 전체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것도 좋다.
77 ซ. เอกมัย 21 Khwaeng Khlong Tan Nuea, Watthana, Krung Thep Maha Nakhon 10110 태국
권효정 여행+ 기자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