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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야, 노래방이야…10걸음마다 새 노래 들리는 중국 밤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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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하이난 링수이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저녁 식사를 전후해 시간이 남아 숙소 바로 옆 링수이강변을 걸었다. 밥을 먹기 전 한 번, 식사를 마친 뒤 한 번 더 같은 길을 걸었다.

분명 같은 공원인데 해가 떨어지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공원 곳곳에는 즉석 노래방을 차린 주민들이 자리를 잡았다. 조금만 더 걸으면 에어로빅 음악에 맞춰 칼군무를 추는 사람들이 나왔고, 다리 건너편에서는 1990년대 댄스클럽을 연상시키는 음악에 맞춰 남녀가 짝을 지어 춤을 췄다.

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개성 넘치는 현지인들의 밤을 따라 걸어봤다.

하이난에서도 현지 느낌 가득한 링수이강변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海南岛)은 연중 온화한 기후와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 풍부한 열대 과일로 ‘중국의 하와이’라 불리는 휴양지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열대기후에 속하는 섬으로 푸른 바다와 리조트가 밀집한 싼야(三亚)를 중심으로 휴양 관광이 발달해왔다.

하이난 남동부의 링수이 리족자치현(陵水黎族自治县)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유명 관광지 특유의 ‘꾸며진 풍경’보다 현지인의 생활이 그대로 묻어난다. 숙소 근처 링수이강변 공원을 걸을 때도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실제로 링수이강변은 관광지보다 주거지역에 가깝다. 2025년 기준 상주인구는 38만4100명이다. 이 가운데 도시 인구는 18만1000명, 농촌 인구는 20만3100명이다.

링수이강은 링수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남중국해로 흘러드는 지역의 대표 하천이다. 현지에서는 ‘링수이의 어머니강’이라 부를 만큼 상징성이 크다. 강 양쪽에는 산책로와 공원, 광장이 이어져 주민들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으로 쓰인다.

숙소 앞 링수이 연정문화공원(陵水廉政文化公园)부터 걸음을 뗐다. 강 양쪽을 따라 잘 정비된 산책로와 휴식공간이 이어졌다. 밤이 되자 이곳은 누구나 설 수 있는 무대가 됐다.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노래방 화면을 띄운 뒤 원하는 곡을 골라 마이크를 잡았다. 실력을 들어보면 전문 가수라기보다 그저 노래가 좋아 밖으로 나온 동네 주민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연하는 것도 아니었다. 돈을 받는 것도,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부르고 싶은 노래를 골라 목청껏 불렀다.

정식 무대도 없었다. 공원 곳곳에서 개인 노래방 기기를 들고 나온 주민들이 저마다 마이크를 잡았다. 가까운 곳에서는 여러 노랫소리가 한꺼번에 겹쳐 들릴 정도였다.

노래 사이로 유독 빠른 템포의 음악이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니 이번에는 중년 여성들이 대형 스피커 앞에서 일렬로 춤을 추고 있었다.

중국 도심 공원과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장무(广场舞)’다. 주로 중장년층이 음악을 틀어놓고 단체로 춤을 추는 문화로 단순한 운동을 넘어 주민들의 대표적인 사교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중국 여행을 간다는 최유연 씨는 “중국에서는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며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는데 중국에서는 일상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자유로워 보여 부럽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다리 하나 건넜더니 시작된 ‘밤 관광’

공원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링수이강을 잇는 보행자 전용 다리 즈인교(知音桥)를 건너면 곧바로 ‘링수이 하집(陵水河集)’이라는 강변 야시장이 펼쳐진다.

링수이현이 야간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야간 문화공간이다. 푸드코트와 푸드트럭, 플리마켓, 버스킹 무대, 문화광장이 한데 모여 있다.

앞서 공원에서 본 노래와 춤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놀이였다면 이곳은 조금 더 정돈된 즐길거리다. 작은 버스킹 무대까지 갖춰 매일 밤 강변에 작은 축제 하나가 열리는 듯했다.

대체로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운영하고 일부 푸드트럭은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

대표 먹거리는 하이난 전통 디저트 칭부량(清补凉)이다. 차가운 코코넛 밀크에 망고와 파인애플, 용과 같은 열대 과일과 젤리, 팥, 콩 등을 넣어 먹는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양고기, 오징어 꼬치구이와 열대 과일 생주스도 곳곳에서 팔았다. 핸드메이드 액세서리와 기념품, 의류를 판매하는 플리마켓도 함께 열렸다.

야시장을 걷다 보면 유독 큰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눈길을 끄는 구역이 나온다. 강 건너 숙소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다.

체험형 야간 엔터테인먼트 공간 ‘리듬월드(节奏世界)’다.

간판 아래에는 ‘왕홍 다카 오락구역(网红打卡娱乐区)’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왕홍(网红)’은 중국의 온라인 인플루언서를 뜻한다. ‘다카(打卡)’는 인기 장소를 찾아가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는 문화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들어가 원하는 노래가 나오면 무대에서 춤을 췄다. 나머지는 주변에 서서 구경했다.

처음에는 아무나 들어가 마음대로 춤추고 나오는 공간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정해진 안무가 있었고 짝을 지어야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자유롭게 보이는 공간에도 일종의 ‘커플 참여 규칙’이 있는 셈이다. 음료는 15~40위안(약 3000~6000원) 선이다. 함께 춤출 사람이 있다면 직접 무대에 들어가 즐겨볼 만했다.

산책을 이어가다 다리 하나를 더 건너면 강변 산책로와 바로 연결되는 해운광장(海韵广场)에 닿는다.

링수이 시내에서 규모가 크고 상업시설이 잘 갖춰진 쇼핑몰이자 광장이다. 저녁 식사와 쇼핑, 강변 산책을 한 번에 연결할 수 있어 현지 주민들이 저녁 약속이나 외식을 위해 즐겨 찾는 번화가였다.

스타벅스와 KFC,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부터 중식과 태국식, 하이난 현지 음식점까지 다양하게 입점해 있었다.

차바이다오와 믹쉐빙청, 나이쉐더차 등 중국의 인기 밀크티 브랜드도 만날 수 있었다. 이른바 ‘장원영 밀크티’로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린 차지(茶枝) 역시 입점해 있었다.

밤마다 공원이 북적이는 이유

이런 풍경은 링수이만의 장면은 아니다. 링수이강변의 밤이 유독 활발한 데는 주민 문화뿐 아니라 정책적인 배경도 있다.

중국의 도심 공원은 단순히 산책하고 쉬는 녹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아파트 단지 중심의 주거환경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공원과 광장은 집 밖에서 이웃을 만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동생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집 안의 거실이 바깥으로 확장된 셈이다.

상하이 인민공원처럼 주말마다 부모들이 자녀의 나이와 학력, 직업, 재산 등을 적은 종이를 들고 배우자를 찾는 ‘상친자오(相亲角·중매 코너)’가 형성된 곳도 있다.

정부 정책도 이런 공원 문화를 뒷받침했다.

2015년 중국 문화부와 국가체육총국, 민정부, 주택도시농촌건설부는 광장춤을 대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체육 활동으로 규정했다. 공원과 광장, 지역사회 공간을 활용하도록 하는 지침도 마련했다.

공원이 단순한 녹지를 넘어 주민들이 운동하고 교류하는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여기에 2019년 이후 본격화한 ‘야간경제’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야간경제 정책은 음식점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요 상권과 특색 거리를 중심으로 문화와 관광, 여가를 결합하고 심야 식당과 야간 소비구역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야간 교통과 조명, 안전·환경시설도 함께 확충했다.

2021년 발표한 ‘14차 5개년 문화와 관광 발전계획’에서는 2025년까지 200개 이상의 국가급 야간 문화·관광 소비 집적구를 조성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중국에 27년 거주했다는 라미타 코리아 한단 대표는 “중국 공원에는 라이브 방송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 산책하면서 볼거리가 많다”며 “여름에는 낮이 더워 밤에 공원이 더욱 활발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을 먹고 공원으로 나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고 야시장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중국은 공원을 중심으로 이런 생활문화가 잘 발달해 있다”고 설명했다.

숙소 앞 공원에서 시작해 다리 두 개를 건넜을 뿐이다. 그런데 즉석 노래방과 광장춤, 야시장, 댄스장, 쇼핑몰까지 전혀 다른 장면이 차례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누구도 관광객을 위해 노래하거나 춤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밤을 보내느라 바빴다. 중국의 밤공원이 재미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현지인의 하루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문서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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