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길을 잃고 나서야 보인
포르투갈의 진짜 모습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그곳은 생애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곳일테니 말이죠.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낯선 설렘 아닐까요. 여책저책은 ‘계획대로 되지 않은 여행’이 오히려 더 깊은 기억을 남긴다는 깨달음을 여행지에서 겪은 이를 만납니다.
지안 작가는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를 통해 캐리어가 부서지고 길을 헤매던 서툰 첫 여행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왕좌왕 포르투갈’을 쓴 허경주 작가는 엄마와 딸이 낯선 나라에서 좌충우돌하며 서로를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두 저자 모두 명소를 얼마나 봤는지보다 헤매고 부딪히며 발견한 사람과 나눈 순간을 여행의 진짜 의미로 그려냈습니다. 뭐든 처음이 있고, 어떤 여행이든 좋든 싫든 추억을 남기기 마련인데요. 혹시 지금 여행을 준비 중인 분이라면 완벽을 좀 덜고 설렘을 더 얹어 떠나보길 권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
지안 | 마레
여행을 떠나기 전 유난히 분주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다. 교통편은 물론, 숙소부터 동선, 맛집과 관광지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정작 여행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계획표 밖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길을 잃고, 버스를 놓치고,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만난 풍경이 오히려 마음에 남는다.
지안 작가의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는 그런 ‘예상 밖의 여행’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포르투갈 포르투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낯선 도시에서 서툴게 살아보며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성장의 기록을 책에 담았다.
스물두 살 봄, 저자는 우연히 본 영상 하나에 이끌려 포르투행 비행기표를 끊는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캐리어가 부서지고 길을 헤매는가 하면 버스표를 사지 못해 며칠 동안 걷기만 했다. 여행 초보에게는 당황스러운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바로 그 서툼이 포르투를 특별한 도시로 만들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했기에 골목을 더 오래 걸었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사람을 만났으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시간에 도시의 진짜 표정을 발견했다.
저자는 그 여행을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툴러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특별함은 2019년과 2022년, 두 번의 포르투 여행을 한 권에 담았다는 데 있다. 처음 포르투를 찾았을 때는 ‘나를 알고 싶어서’ 혼자 떠났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내가 반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포르투행 비행기에 올랐다.
같은 도시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달라져 있다. 첫 번째 포르투가 낯선 세상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여행이었다면, 두 번째 포르투는 사랑하는 사람과 기억을 나누는 여행이었다. 혼자였던 골목에 둘의 추억이 더해지고, 혼자 바라보았던 풍경을 이제는 함께 바라본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포르투라는 도시의 풍경보다 여행하는 사람의 변화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포르투는 거창한 명소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두르지 않고 거리를 걷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웃는 순간이 여행의 행복이 된다.
저자는 마토지뉴스의 바다를 이야기하며 여행의 행복이 결국 이런 소박한 조각들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여행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풍경, 꼭 먹어야 할 음식, 유명한 명소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뒤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아주 평범한 순간일 때가 많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게, 별것 아닌 대화, 흐린 날의 골목, 따뜻한 한 끼, 함께 웃었던 시간 같은 것들이다.
포르투가 사랑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화려함보다 소박함이 있고, 완벽하게 정돈된 관광지보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저자가 두 번의 여행에서 경험한 포르투도 그렇다. 흐린 날에는 흐린 날대로 아름답고, 계획이 어긋나면 어긋난 대로 새로운 이야기가 생긴다. 심지어 ‘얄미운 포르투’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다시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여행에서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도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과 닮았다. 처음에는 좋은 모습만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예상하지 못한 단점도 발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까지 알게 된 뒤에는 더 깊이 좋아하게 된다.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는 포르투에 관한 책인 동시에 ‘시작’에 관한 책이다. 완벽한 여행을 준비하는 대신 일단 비행기표를 끊고, 완벽한 글을 쓰려고 미루는 대신 첫 문장을 써보고, 완벽한 사람이 된 뒤 사랑하려는 대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가 포르투에서 발견한 것은 어쩌면 완벽한 도시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떠난 여행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고, 함께한 여행은 오래 잊지 못할 기억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시간이 됐다는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사람마다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우왕좌왕 포르투갈
허경주 | 미다스북스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함께 건너는 일인지도 모른다. 허경주 작가의 책 ‘우왕좌왕 포르투갈’은 환갑을 앞둔 엄마와 서른을 앞둔 딸이 6박 8일 동안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겪은 좌충우돌의 기록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포르투갈의 유명 명소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서 헤매고, 낯선 교통수단을 타고, 길을 잃고,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여행의 진짜 얼굴을 담았다.
두 사람의 여행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다. 이스탄불 공항 경유부터 포르투갈 리스본의 돌길, 낯선 버스와 우버,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까지 여행 초보자가 마주할 법한 상황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자는 불편과 시행착오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행의 묘미, 불편함 즐기기’라는 목차처럼 계획에서 벗어난 순간마저 여행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고 해서 여행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듯 말이다.
그래서 리스본을 걷는 장면도 조금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찾아가고, 페르난두 페소아의 흔적을 더듬고, 영화와 소설 속에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 나선다. 푸니쿨라를 타고, 수도원을 바라보고, 박물관에 사는 고양이를 만나고, 시장과 골목을 걷는다. 관광명소를 하나씩 체크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특히 ‘느리게 읽기, 느리게 걷기’라는 표현은 이 책의 여행법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광장과 골목, 서점과 카페에 머물며 도시를 서둘러 소비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봤는지보다 무엇을 느꼈는지에 집중한다.
해물밥 한 냄비와 달콤한 나타 한 조각도 포르투갈이라는 낯선 나라를 이해하는 경험이 된다. 노을에 물든 리스본의 풍경 역시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날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본 시간으로 기억된다.
포르투로 향하면 여행의 시선은 풍경에서 사람들의 삶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낯선 터미널에서 만난 빵, 장거리 시외버스, 시장, 예배당, 대성당과 골목길을 지나며 저자는 관광객의 자리에서 한 발짝 벗어난다.
‘해리포터가 없어도 괜찮아’라는 제목처럼 유명한 무엇인가를 찾아야만 여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걷다가 마주친 풍경과 사람,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오래 머무는 것은 포르투갈보다 ‘엄마와 딸’이라는 두 사람의 관계다. 환갑을 앞둔 엄마와 서른을 앞둔 딸. 같은 장소를 함께 바라보지만 생각하는 방식도, 여행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다르다.
낯선 곳에서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차이 때문에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길을 찾고, 음식을 고르고, 예기치 않은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여행의 동반자이자 서로의 든든한 편이 된다.
여행은 결국 관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익숙한 관계 속에 머물렀던 엄마와 딸에게 낯선 도시는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무대가 된다.
책을 덮을 무렵에는 포르투갈보다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미루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읽고 여행하는 삶을 꿈꿨고, 결국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인생 후반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했다. 책과 여행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실제 삶으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단순히 ‘엄마와 딸이 포르투갈에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 미뤄둔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작은 응원처럼 읽힌다.
여행에는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이 없다. 비행기를 잘 타고, 길을 잘 찾고, 현지 교통을 능숙하게 이용해야만 좋은 여행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헤매고 실수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여행이 삶과 닮은 지점이다.
책은 그래서 ‘완벽한 여행’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서툴러서 더 오래 기억되는 여행을 보여준다. 결국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얼마나 정확하게 도착했느냐가 아니다. 조금 헤매더라도 누구와 함께 걸었는지, 그 길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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