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걷는 순간 여행 시작이라는 뚜벅이족만의 여행법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익숙함’은 꽤나 중요합니다. 자신이 정해 둔 위치에 물건이 없다거나 단골 커피집 또는 밥집의 맛이나 분위기가 바뀌면 어색을 넘어 당황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이렇듯 평소에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익숙함’은 우리 삶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물론 때로는 새로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아니 간절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의 1순위는 여행입니다. 콧바람이라고도 부르는 주의환기는 자극을 주기도, 깨달음을 얻게 하기도 합니다.
제주 올레길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여책저책이 만날 두 권의 책은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당일치기 조선여행: 전국편’과 ‘대충 그린 서울 핫플 다이어리’는 익숙한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합니다.
‘당일치기 조선여행: 전국편’은 역사 스토리텔링으로 골목과 유적에 시간을 입히고, ‘대충 그린 서울 핫플 다이어리’는 그림과 감성 에세이로 지하철 노선 위 일상을 기록합니다. 두 책 모두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걷는 순간 공간이 이야기가 되는 경험을 제안합니다.
당일치기 조선여행: 전국 편
트래블레이블 外 | 노트앤노트
익숙한 도시의 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길 위에는 어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을까. 문화유산 해설 전문 여행사 트래블레이블이 기획하고 지식 가이드 이용규, 김혜정, 송은교, 장보미, 최윤정이 집필을, 임현철이 사진을 맡은 책 ‘당일치기 조선여행: 전국 편’이 그 물음에 답한다.
부제는 ‘지식 가이드와 떠나는 팔도강산 역사 투어’로 정했다. 전작 ‘당일치기 조선여행’이 한양과 경성을 중심으로 조선을 다뤘다면, 이번 책은 경기 수원·경북 안동·전북 전주·광주·제주 등 전국으로 무대를 넓혔다.
책은 ‘읽는 역사’에서 ‘두 발로 느끼는 역사’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4만여 여행자가 선택한 지식 가이드 투어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실제 답사 동선을 고려한 12개의 투어 스크립트를 담았다. 조선 왕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600년의 시간을 따라가며, 궁궐과 서원, 장터와 항구, 역과 골목에 남은 흔적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책은 크게 두 주제로 구성한다. 1부는 조선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수원 화성에서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상권 활성화 정책을 짚고, 서울 신당동에서는 광희문과 무녀의 노제를 통해 도성 밖 삶의 풍경을 그린다.
안동 도산서원에서는 이황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 공동체의 면모를, 강릉에서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통해 조선 여성 예인의 삶을 조명한다. 전주 동학농민혁명 편은 “사람처럼 살다 죽겠다”는 외침을 따라 민중의 역사를 되짚는다.
2부는 일제 강점기로 시선을 옮긴다. 인천 개항장과 군산항에서는 개항의 빛과 그림자를, 서울 서촌에서는 애국과 매국의 엇갈린 선택을 다룬다. 광주에서는 최흥종의 삶을 통해 약자와 연대하는 길을 살피고, 대구에서는 예술가들이 억압의 시대를 견뎌낸 방식을 소개한다.
제주 여성 해녀들의 항일 투쟁, 경주 서봉총 발굴을 둘러싼 일제의 문화 수탈, 대전의 계획 도시화 과정도 구체적 사례와 함께 풀어냈다.
책은 방대한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주요 사건을 한눈에 정리한 연표, ‘더 알아보기’ 코너, 지도와 일러스트를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인천 개항장 / 사진 = 한국관광공사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여행자의 사유를 끌어낸다. 과거 인물들의 결단과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오늘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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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거를 박제된 유산이 아닌, 현재와 연결된 살아 있는 역사로 제시한다. 책이 안내하는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조선의 장터와 근대의 거리 한복판에 서게 된다.
대충 그린 서울 핫플 다이어리
글‧그림 이예은 | 이덴슬리벨
바쁜 하루 끝,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은 가능하다. 지하철 한 정거장만 이동해도 전혀 다른 공기와 풍경이 펼쳐지는 도시 서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예은이 글과 그림으로 엮었다. 책 이름은 ‘대충 그린 서울 핫플 다이어리’, 부제는 ‘노선 따라 즐기는 도심 속 감성 스팟 242’다. 1호선부터 6호선까지, 총 36개 지하철역과 그 주변 242곳의 공간을 한 권에 담았다.
책은 인스타그램 ‘대충다이어리’에서 일상의 순간을 따뜻한 그림으로 기록해온 이예은 작가의 첫 단행본이다. 스스로를 ‘뼛속까지 뚜벅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용해온 서울 지하철에 대한 애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도심 곳곳의 매력적인 공간을 발품으로 찾아 기록했다. 프리랜서 PD로 활동하며 카페를 ‘오늘의 사무실’ 삼아 유랑하듯 도시를 오간 경험이 책의 밑바탕이 됐다.
책은 노선별 구성이라는 점에서 기존 여행서와 차별화한다. 각 장은 1호선부터 6호선까지 여섯 개 파트로 나뉘며, 종각·서울·용산·시청·가산디지털단지역 등 주요 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카페, 식당, 산책길, 랜드마크를 소개한다. 합정·홍대입구·경복궁·안국·혜화·이태원·망원 등 개성 강한 지역도 빠트리지 않았다.
저자는 단순한 장소 정보를 넘어 노선이 품은 정서와 기억을 함께 풀어낸다. “사람들은 1호선을 흔히 ‘빌런들의 호선’이라 부른다”는 문장처럼 익숙한 편견을 유쾌하게 비틀고, 2호선을 두고는 “인생의 가장 달콤한 기억과 가장 떫은 기억이 이 둥근 초록선 위에서 돌고 있다”고 적는다.
3호선은 “시간 여행의 노선”으로 명명하며 경복궁과 안국, 압구정과 신사를 잇는 선로 위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얼굴을 그려낸다.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대충’ 그린 듯 보이지만 세심하게 완성한 그림이다. 손글씨로 적은 깨알 같은 정보와 지도, 일러스트는 독자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각 장에 실린 짧은 에세이는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전한다.
한강을 건너는 순간 승객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드는 장면, 기관사의 안내 멘트가 건네는 위로 등 일상의 단면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서울 노들섬에서 바라본 지하철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책은 거창한 여행 계획 대신 가벼운 산책을 제안한다. 집콕은 싫지만 멀리 떠날 시간은 부족한 도시생활자, 검색은 번거롭지만 새로운 공간은 궁금한 이들에게 실용적인 가이드가 된다.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를 감성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일기이기도 하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서울. 같은 노선을 타고도 전혀 다른 하루를 만날 수 있다. 책은 지하철 선로 위에 겹겹이 쌓인 서울의 표정을 따라가며,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법을 건넨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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