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나이 들었다고 세계 여행 못가라는 법 있냐는 70대 노익장
여행은 언제가 가장 좋을까요. 체력이 가장 좋을 때, 시간이 가장 많을 때, 아니면 마음이 준비됐을 때. 사실 모든 때가 다 좋습니다. 다만 사람의 인생을 보면 아무래도 나이가 들었을 때, 여러 상황이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춥니다.
볼리비아 라파즈 달의 계곡 / 사진 = 지식과감성 출판사
여책저책은 일흔을 넘기며 ‘나이 든 이후의 여행’을 다룬 두 권의 책을 만납니다. 자신의 내면을 향해 비워내는 여행 방식을 택한 이와 가능한 조건 안에서 끝까지 가보는 여행법에 도전한 이의 얘기입니다.
‘칠십 여행’
이여진 지음, 서진 엮음 | 스노우폭스북스
오래 걸어야 닿는 곳이 있다. 오래 살아야 비로소 보이는 길도 있다. 책 ‘칠십 여행’은 그 문장을 삶으로 증명한 한 여성의 기록이다. 33년간 직장인으로,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 며느리로 역할을 다한 뒤 은퇴 후 10여 년. 삶의 방향이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 있었던 시간이다.
그러다 비로소 나를 위한 시간이 찾아왔고, 그렇게 여행길에 올랐다. 저자 이여진은 그 시간 동안 세계 여러 도시를 걸으며 여행을 썼고, 그 여행은 결국 자신을 향했다. 이 책은 3대륙 12개국의 풍경을 담은 27편의 여행 에세이이지만, 목적지는 늘 같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 사진 = 스노우폭스북스
풍경은 과거로 이어지고, 과거는 다시 지금의 나를 비춘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의 노을 앞에서는 신혼의 시간이 겹쳐지고, 호주 멜버른 퍼핑빌리에서 마주한 펭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는 아이들의 첫걸음이 떠오른다.
저자가 말하듯 ‘여행을 쓰려 했는데 결국 나를 쓰고 있었다’는 고백이 이 책의 핵심이다. ‘칠십 여행’은 풍경, 사람, 사물, 공간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끝에서 인생으로 돌아온다.
체코 프라하 오를로이 시계탑 / 사진 = 스노우폭스북스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의 황금빛 화려함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온 여성들의 시간을 떠올리고, 오래된 유적 앞에서 문명이 아닌 인간의 흔적을 먼저 바라본다. 젊은 날의 여행이 풍경을 수집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비워내는 일이다. 더 많이 보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보려는 태도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나이 듦을 상실의 언어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이 듦을 ‘역할에서 벗어나 존재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말한다.
젊을 때는 상처를 먼저 보지만, 나이 들면 빛을 먼저 보게 된다는 문장은 체념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에 가깝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고백이다.
아직 칠십에 도착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 책은 미리 건네는 풍경이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시간에 오히려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말해준다.
백두산 천지 / 사진 = 스노우폭스북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독자에게는 자신의 여정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남의 여행을 읽는 듯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나는 언제 ‘나’로 떠날 것인가.
‘칠십 여행’은 여행의 기록이자 인생의 증언이다. 세상을 보러 떠났지만 끝내 마주한 것은 오래된 자신이었다는 사실. 그 조용한 진실이 이 책을 단순한 여행서가 아닌, 오래 곁에 두고 읽게 되는 인생 에세이로 만든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황현탁 | 지식과감성#
책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은 제목과 내용이 한결 같다. 제목 느낌을 그대로 살려 완주한 여행기다. 저자 황현탁과 고등학교 동기 7명은 모두 일흔을 넘긴 나이에 36일간 중남미 7개국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패키지 일정도, 여행사의 보호막도 없이 이동과 숙소, 식사까지 스스로 해결했다. 사고 없이, 고산증세도 없이,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의 연속 끝에 이들은 자신들의 여정을 책으로 옮겼다. 언뜻 무모해 보였던 도전이 책으로 담담하게 실렸다.
이 여행은 거창한 결심보다 단순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문장. 더 미룰 수 없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지금의 몸과 지금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태도에 가깝다.
마추픽추 / 사진 = 지식과감성 출판사
저자와 동행자들은 어렵던 시절 꽁보리밥으로 단련된 체력을 끌어내며, 젖 먹던 힘까지 보태 하루하루를 건넌다. 여행은 낭만보다 노동에 가까웠고, 자유여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책은 중남미의 풍경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국경선이 전쟁의 결과로 그어졌다는 사실, 전쟁을 통해 국토를 잃은 나라들의 역사, 힘의 논리가 만들어낸 지도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저자는 “이기지 못할 전쟁은 시작도 하지 말라”는 교훈을 여행지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계를 읽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구아수 폭포 / 사진 = 지식과 감성 출판사
많은 이들이 중남미 여행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마추픽추보다, 저자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하는 곳은 브라질 이구아수폭포다. 전망데크에서 마주한 압도적인 물줄기는 물안개가 자욱했는데도 환상적이었다.
아쉬움도 분명하다. 현지 음식을 먹었지만 현지인들과 깊이 교류하지 못했고, 전통문화의 결까지는 닿지 못했다는 고백. 여행 전 수십 권의 책을 읽었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솔직함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책은 나이 듦을 미화하지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대신 가능한 조건 안에서 끝까지 가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젊어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가장 젊다는 인식. 이 책은 그 문장을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조용히 완주해 보임으로써 설득한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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