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마카오] 포르투갈의 시간·중국의 맛·런더너의 밤
…마카오가 더 특별한 이유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눈부신 마카오
유럽풍 건물과 중국식 사원…매력 다채
골목 로컬 미식부터 파인다이닝까지 풍성
럭셔리 리조트·야경이 완성하는 밤 화려
마카오의 야경 / 사진 = 변덕호 기자
눈부신 카지노 조명과 거대한 복합리조트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스카이라인. 해가 지면 마카오는 거대한 축제장처럼 깨어난다. 그러나 아침이 찾아와 휘황찬란한 불빛이 걷히면 이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르투갈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성당과 광장, 중국 전통이 살아 있는 사원, 여행자의 발길을 붙드는 미식 골목까지. 불과 수십 분 거리 안에서 유럽과 아시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도시, 마카오의 다채로운 매력을 따라가 봤다.
마카오 곳곳 표기된 포르투갈어 / 사진 = 변덕호 기자
“영어 같기도 하고, 스페인어 같기도 한데 어딘가 낯설다.”
마카오 시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낯설면서도 익숙한 언어를 마주하게 된다. 알파벳인 건 분명히 알겠는데 전혀 발음을 할 수 없어 찾아보니 포르투갈어다. 마카오 상점 대부분의 간판에는 중국어와 함께 포르투갈어가 병기돼 있다. 아시아의 도시 한복판에서 포르투갈어를 마주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낯설고 흥미롭다.
마카오의 독특함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16세기부터 약 40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는 중국 땅이면서도 유럽의 정취를 간직한 드문 도시다. 1999년 중국 반환 전까지 유럽 국가의 마지막 아시아 식민지였던 만큼 동서양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거리 곳곳에서는 포르투갈어가 들리고, 중국어와 포르투갈어가 함께 적힌 표지판은 이 도시가 걸어온 독특한 역사를 나타낸다.
세나도 광장 / 사진 = 변덕호 기자
포르투갈의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마카오의 심장부인 세나도 광장이다. 광장 바닥을 가득 채운 검은색과 흰색의 물결무늬 모자이크는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파도가 출렁이는 듯한 곡선은 포르투갈식 석재 포장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광장 주변으로는 색바랜 파스텔톤 건물과 아치형 회랑, 중앙 분수가 조화를 이루며 유럽 특유의 정취를 자아낸다. 중국 남부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 만큼 이국적인 풍경이다.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여행객들, 분수대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잔뜩 흐린 하늘 아래서도 세나도 광장은 끊임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 바울 성당 / 사진 = 변덕호 기자
물결무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석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웅장한 성바울 성당 유적이다. 1835년 화재로 정면 석벽만 남았지만 그 존재감 만큼은 가히 압도적이다. 수십 개의 계단 위로 우뚝 솟은 화강암 외벽에는 성모 마리아상과 천사, 용과 한자 문양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서양식 종교 건축물에 동양적 상징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은 동서양 문화가 만난 마카오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당 앞 계단은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관광객들, 에그타르트와 육포를 손에 든 채 잠시 쉬어가는 여행객들, 계단에 앉아 마카오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곳을 즐긴다. 계단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나도 광장에서부터 이어진 골목과 붉은 지붕들, 그 사이를 가득 메운 여행객들의 발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성바울 성당의 매력은 정면 석벽에만 있지 않다. 성당 뒤편으로 들어서면 과거 성당의 기초 유적과 유물이 보존된 공간이 나타난다. 지하 박물관에는 선교사들의 유해와 종교 유물이 전시돼 있어 화려한 관광 명소 뒤에 숨겨진 수백 년의 역사를 담담히 들려준다. 많은 여행객이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발길을 돌리지만 성당 뒤편까지 둘러보고 나면 이곳이 왜 마카오를 대표하는 명소로 꼽히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아마 사원 / 사진 = 변덕호 기자
성바울 성당의 석벽을 뒤로하고 차로 10여 분 남짓 이동하면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붉은 기둥 사이로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고 곡선형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낸다. 향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골목 끝에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 사원 아마사원이 있다.
1488년 건립된 이곳은 바다의 여신이자 해상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마조(媽祖)’를 모시는 사원이다. 도교와 불교, 민간신앙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마카오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진 왼쪽부터 아마 사원 내 만수향, 기도하는 사람 / 사진 = 변덕호 기자
사원 계단을 따라 위로 오를수록 공기는 더욱 짙어진다. 손에 향을 든 사람들이 연기를 하늘로 올리며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천장에는 나선형으로 꼬인 거대한 만수향이 빼곡히 매달려 있다. 며칠씩 타오르는 향은 소망을 더 오래 머물게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 사원은 ‘마카오’라는 지명의 유래와도 연결돼 있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에 상륙해 지명을 묻자 주민들이 사원의 이름인 ‘아마각(A-Ma-Gao·아마의 만)’을 답했고 이것이 마카오(Macau)로 굳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카오 에그타르트 / 사진 = 변덕호 기자
‘금강산도 식후경.’ 마카오는 식문화에서도 동서양의 조화로움이 드러난다. 마카오의 로컬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타이파 빌리지는 필수 코스다. 화려한 복합리조트가 늘어선 코타이 지구와 불과 몇 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알록달록한 포르투갈풍 건물과 좁은 골목골목 사이로 로컬 식당과 카페, 디저트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버터 향이 짙게 퍼지는 에그타르트 가게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꼽히는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에서 유래했지만 마카오 현지식으로 변형되며 또 다른 개성을 갖게 됐다.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이 어우러진 맛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타이파 빌리지 골목 있는 생선 통조림 가게 / 사진 = 변덕호 기자
“한국에도 통조림이 있죠? 마카오는 해산물 통조림으로 유명하답니다.”
타이파 빌리지 골목 한편에는 형형색색의 깡통이 벽면을 가득 채운 상점이 자리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캔에 시선을 빼앗겨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은 팔레트처럼 생긴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그 위에는 각기 다른 해산물 통조림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드러낸 채 놓여 있었다.
가게 앞에서 보았던 깡통들의 정체는 생선 통조림이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장 친숙한 식재료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그 문화가 마카오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주인은 몇 가지 통조림을 직접 열어 크림치즈를 바른 비스킷 위에 올려 건넸다. 비릿한 향과 향신료의 기운이 동시에 올라왔지만 생각보다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꽁치 통조림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맛에 은근한 매콤함이 더해졌다. 맥주나 와인 안주로 곁들이기 좋은 구성이다. 몇 가지 맛만 본다는 생각이었지만 나설 때쯤 손에는 어느새 통조림 다섯 개가 들려있었다.
사진 왼쪽부터 런더너 그랜드 빅벤, 런더너 호텔 내부 / 사진 = 변덕호 기자
낮 시간대 마카오의 로컬을 즐겼다면, 밤에는 한층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다이닝을 즐길 차례다.
택시가 코타이 지구로 접어들자 창밖 풍경이 달라졌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물든 런더너 그랜드 마카오~파리지앵 마카오~베네시안 마카오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럽의 도시를 축소해 옮겨놓은 듯한 건물들 아래로는 쇼핑객과 관광객들이 늦은 밤까지 오가며 거대한 리조트 단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후 8시. 런더너 마카오 앞에 도착하자 ‘둥-둥-’ 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각을 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런던의 상징인 빅벤을 본떠 만든 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런더너 그랜드 내부 모습. 호텔 직원들이 영국 근위병 복장을 한채 서 있는 모습 / 사진 = 변덕호 기자
런더너 내부 모습은 영국 황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높은 천장과 화려한 조명 아래 영국 근위병을 연상시키는 붉은 제복 차림의 직원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곳곳에는 레스토랑과 바, 쇼핑 공간이 자리하고 있어 늦은 시간까지 활기가 이어졌다. 런던 특유의 클래식함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리조트 자체가 하나의 관광 코스처럼 느껴진다.
런더너 내부에 위치한 레스토랑들은 마카오 ‘미식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북방 지역의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스 팰리스(North Palace)를 비롯해 영국의 햄프턴 코트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꾸며진 햄튼 코트 등 다양한 콘셉트의 레스토랑이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이 중 노스 팰리스는 런더너 마카오의 대표 중식 레스토랑이다. 중국 북방 지역의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식당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개방형 주방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주문한 코스 메뉴는 흑초 드레싱을 곁들인 활전복과 해삼, 황금빛 육수에 푹 익힌 해삼과 어부레, 바삭한 껍질이 돋보이는 베이징덕 등으로 구성해 북방 요리의 다양한 매력을 맛볼 수 있었다.
노스 팰리스에서 손님 식사 중 군무를 보이는 직원 / 사진 = 변덕호 기자
직원들은 메뉴에 사용된 식재료와 조리법을 세세하게 설명하며 식사의 이해를 돕는다. 단순히 음식을 맛보는 것을 넘어 한 코스씩 이야기를 따라가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중국 전통 무용 공연이 펼쳐지며 눈과 입을 동시에 즐겁게 했다. 디저트로 나온 비파 탕후루는 과즙이 풍부한 과일의 상큼함과 바삭한 설탕 코팅이 어우러져 긴 코스 요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햄튼 코트 역시 런더너의 미식 경쟁력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영국의 햄프턴 코트 궁전에서 영감을 받아 꾸며진 레스토랑은 진귀한 보석색 계열의 인테리어와 황동 장식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국 요리와 서양식 메뉴, 신선한 해산물과 디저트까지 폭넓은 메뉴가 준비돼 있었지만 가장 긴 줄이 늘어선 곳은 의외로 캐비어 코너였다. 크래커 위에 사워크림을 바르고 캐비어를 올려주는 단순한 메뉴였지만 개장 직후부터 사람들이 몰리며 가장 먼저 품절되는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런더너 그랜드 마카오가 제공하는 버틀러 서비스 / 사진 = 변덕호 기자
객실에서도 런더너가 내세우는 영국식 콘셉트가 이어졌다. 객실 안에는 영국 팝아트와 런던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대리석 욕실과 넓은 창문, 세심하게 배치된 가구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부 객실에서는 전담 버틀러 서비스도 제공돼 체크인부터 식음 예약, 이동까지 세심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파리지앵 마카오로 이동하자 분위기는 다시 프랑스로 바뀌었다. 호텔 중앙에 자리한 에펠탑 모형은 코타이 지구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객실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에펠탑이 펼쳐지는 객실도 적지 않다. 밤이 되면 조명 쇼가 시작되고 객실 안에서도 이를 감상할 수 있어 파리지앵만의 매력을 더한다.
라 신느의 메인 요리 / 사진 = 변덕호 기자
파리지앵 마카오 6층에 위치한 광둥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라 신느(La Chine)’에서는 코타이 스트립의 야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창밖으로는 축소판 에펠탑이 빛을 밝히고 실내 역시 프랑스풍 감성을 살린 우아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이베리코 차슈와 어부레·흑마늘을 넣어 끓인 닭 스프 등 정교한 광둥 요리는 화려한 플레이팅과 함께 제공돼 보는 즐거움까지 더했다.
베네시안 마카오는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다. 3000개가 넘는 객실과 대형 공연장, 전시장, 쇼핑몰, 레스토랑이 하나의 단지 안에 모여 있다. 객실은 일반 호텔룸보다 훨씬 넓은 스위트 형태다. 한 단 낮게 설계한 거실과 분리형 침실도 특징이다.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쇼핑과 공연, 식사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작은 도시 같은 공간이다.
파리지앵 에펠탑 / 사진 = 변덕호 기자
“그래, 이거지. 마카오는 역시 야경 맛집이지.”
파리지앵 마카오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자 코타이 지구의 불빛이 한눈에 펼쳐졌다. 낮에는 거대한 건물로만 보였던 복합리조트들이 밤이 되자 저마다의 색을 입고 반짝였다. 에펠탑 역시 수많은 조명으로 물들어 또 하나의 야경이 됐다.
전망대 한편에서는 연인들이 자물쇠에 이름을 적어 난간에 걸고 있었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야경을 배경으로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파리지엥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마카오 야경 / 사진 = 변덕호 기자
전망대 가장자리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베네시안과 런더너, 파리지앵을 잇는 불빛들이 하나의 도시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 낮에 걸었던 세나도 광장과 성바울 성당, 타이파 빌리지 골목이 문득 떠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향 냄새 가득한 사원과 로컬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유럽의 밤거리를 닮은 야경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카오의 매력은 그 간격에 있었다. 포르투갈과 중국의 시간이 남아 있는 골목과 세계적인 복합리조트가 한 도시에 공존하고 낮과 밤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밤공기를 맞으며 마지막으로 야경을 눈에 담았다. 과거와 현재, 유럽과 아시아를 하루 안에 오갈 수 있는 곳. 마카오는 한 도시에서 두 번의 여행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었다.
마카오 = 변덕호 디지털뉴스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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