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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등산만 60년, 명산 200곳 넘게 오른 이가 말하는 산을 찾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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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등산만 60년, 명산 200곳 넘게 오른 이가

말하는 산을 찾는 이유

누군가는 우리나라 등산인구를 30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국내 인구수가 5100만명인 것을 상기한다면 어마어마한 숫자인데요. 물론 3000만명이 안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만큼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산에 오르기 좋은 환경을 지녔다는 얘기겠죠. 그래서인지 훌륭한 산악인들이 많은 듯 한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악인인 엄홍길은 등산에 대해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정상을 잠시 빌려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경쟁이나 승패,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죠. 가장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성취감은 분명하지만 잠시일 뿐이라는 겁니다.

제주 한라산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여책저책은 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삶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는 두 책을 만납니다. 김헌삼 작가의 책 ‘먼 산 가까운 산’은 반세기 산행을 통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고요. 장석운 작가의 책 ‘산중문답’은 전국 명산 200곳의 역사와 풍경, 시를 엮어 산이 건네는 성찰을 전합니다.

두 저자 모두 정상에 오르는 결과보다 걷는 과정의 의미를 강조하는데요.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 결국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속도를 되찾는 여정임을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먼 산 가까운 산

김헌삼 | 레페토에이아이

등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산행기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어느 코스로 오르면 좋은지, 정상까지 몇 시간이 걸리는지, 계절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대부분의 산행기가 전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책 ‘먼 산 가까운 산’은 그런 선입견을 조용히 뒤집는다. 이 책은 산을 오르는 기술보다 산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등산화를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사람도 어느새 한 사람의 느린 걸음에 마음을 맡기게 된다.

저자 김헌삼은 1960년대 말부터 등산을 시작해 60년 훌쩍 넘게 전국의 산을 걸어왔다. 직장에서는 현재 우리은행인 한일은행 직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고, 휴일에는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지리산 바래봉 철쭉 / 사진 = 한국관광공사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발품 판 얘기를 ‘산행수상’이란 제목으로 직장 사보에 연재했고,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은퇴 이후에도 그는 산을 오르며, 산을 그렸다. 책 곳곳에 실린 30여 점의 연필 삽화는 오랫동안 같은 풍경을 바라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온기를 품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자의 산행 철학이다. 그는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를 붙이는 것은 아직 덜 산을 좋아하는 것일 것이다”라는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이다.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거창한 이유를 붙이지 않는다. 산으로 향하는 길이 좋고, 숲속 공기가 좋고, 산에서 내려온 뒤 오래 남는 여운이 좋아 산을 찾는다는 것이다.

책에는 경쟁도, 기록도, 인증도 없다. 대신 산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시간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자연이 있다. 참나무와 생강나무의 이름을 배우고, 동고비와 곤줄박이를 친구처럼 바라보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능선을 스치는 바람을 오래 기억한다. 정상은 목적지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글과 그림의 조화다. 저자가 직접 그린 연필 삽화는 정교한 풍경화는 아니다. 투박한 선으로 능선과 나무, 바위와 등산객을 담아냈을 뿐인데 이상하게 오래 시선이 머문다. 사진이 순간을 기록한다면 연필은 기억을 남긴다. 오랜 시간 산을 바라본 사람의 손끝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저자는 결국 산을 통해 삶에 대해 말한다. 빠르게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한 걸음씩 자연과 호흡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목적지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삶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충분히 음미하는 삶이 더 풍요롭다고 조용히 일러준다. 그래서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강원 평창 발왕산 선자령 / 사진 = 한국관광공사

1941년생 저자가 80대에 펴낸 첫 단행본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반세기 넘게 산을 오르며 쌓아온 경험이 과장 없이 문장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책에는 젊은 산꾼의 열정보다는 오래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절제가 배어 있다. 독자를 재촉하지도,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의 보폭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산중문답

장석운 | 보민출판사

산행의 주된 목적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만이 아니다. 한 걸음씩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또한 중요하다. 책 ‘산중문답(山中問答)’은 제목 속에 답이 있다. 산 속에서 묻고 답하듯 책 역시 자연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자 한다. 저자 장석운은 전국의 명산 200곳을 살뜰히 책에 실었다.

그는 산을 단순히 오르고 내려오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산은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쌓아 올린 시간의 공간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장소라고 말한다. 책은 명산의 위치나 등산 코스만 소개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산마다 품고 있는 유래와 전설, 역사, 풍경, 그리고 저자가 직접 써 내려간 시를 함께 엮어 한국의 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강원 춘천 삼악산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저자는 평생 문학과는 거리가 먼 엔지니어로 살았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며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꿈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시를 쓰는 일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개발한 공기청정기를 저소득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하는 사회공헌 활동이었다.

2022년 강원도 춘천의 삼악산을 시작으로 46개월 동안 400여 개의 산에 올랐고, 전국 150여 개 지방자치단체를 찾아 기부 활동을 이어갔다. 저자에게 산행은 개인의 취미가 아니라 자연의 맑은 기운을 이웃과 나누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었다.

경기 가평 유명산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책은 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 등 다섯 권역으로 나누어 한국의 명산 200곳을 소개한다. 산림청과 월간산 등이 선정한 100대 명산을 중심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산을 더해 구성했다. 각 산마다 유래와 역사, 산행에서 느낀 감상, 그리고 직접 촬영한 사진과 자작시를 함께 실었다.

저자는 산을 정복하거나 기록을 남기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상에 가장 빨리 오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걷는 과정에서 만나는 야생화와 숲, 바위와 계곡, 그리고 바람과 새소리를 천천히 느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예상보다 힘든 능선을 만나기도 하며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숲길을 오래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간마저 자연이 건네는 배움이며 삶 역시 언제나 정상만을 향해 달리는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산이 가르쳐 준다고 이야기한다.

전북 고창 선운산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책 곳곳에 실린 시는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고대산’에 실린 ‘철마는 달리고 싶다’에서는 군사분계선 앞에서 멈춰 선 철길과 달리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열차를 통해 분단의 현실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산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시대의 아픔까지 품어내는 시들은 산을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만든다. 다른 산들에서도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생에 대한 성찰이 짧지만 깊은 시어로 표현된다.

이 책은 등산을 즐기는 사람뿐 아니라 산을 오르지 않는 독자에게도 충분한 감동을 준다. 산행 안내서라고 하기에는 문학적이고, 여행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기록의 깊이가 탄탄하다. 두 장르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결합해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산을 찾고 싶은 마음을, 아직 산이 낯선 사람에게는 언젠가 한 번쯤 걸어보고 싶다는 용기를 전한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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