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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로맨틱] 낭만에 유통기한 있다면 ‘만년’이었으면 좋겠다…한여름 홍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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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로맨틱] 낭만에 유통기한 있다면 ‘만년’이었으면 좋겠다

…한여름 홍콩의 추억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홍콩

고궁박물관서 만나는 고대 이집트 문명

공항에서 경기장으로 카이탁스포츠파크

홍콩의 맛을 칵테일서 느끼는 바 호핑

홍콩 센트럴 빽빽한 고층 빌딩 사이로 트램이 지나다니고 있는 거리의 모습. / 사진 = 김혜진 기자

왕가위 영화, 디즈니랜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빅토리아 하버 야경. 홍콩 하면 흔히 떠올리는 장면들이다. 빽빽한 고층빌딩 사이를 오가는 트램과 골목의 네온사인, 딤섬까지 더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의 모습은 꽤 선명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마주한 홍콩은 조금 달랐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묘하게 공존하는 도시였다. 수천 년 전 문명의 유물이 현대적인 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한때 비행기가 오가던 공항 부지는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오래된 음식의 맛은 바텐더의 손을 거쳐 새로운 칵테일이 되기도 했다.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에 위치한 고궁박물관. 8월 31일까지 특별관에서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 고대 이집트, 시간의 베일을 걷다’ 전시가 진행된다. / 사진 = 김혜진 기자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찾은 곳은 홍콩고궁박물관이다. 홍콩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만나는 것이 다소 의외일 수 있지만, 현재 이곳에서는 5000년에 걸친 문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달 말까지 진행되는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 고대 이집트, 시간의 베일을 걷다’는 이집트 7개 주요 박물관과 사카라 유적지에서 온 유물 250점을 통해 고대 이집트 문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조각과 부조, 석비, 금장신구, 미라관과 동물 미라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의 정치와 종교, 예술, 일상을 살펴볼 수 있다. 평일 낮이었지만 전시장에는 중국 본토 관광객을 비롯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에 위치한 고궁박물관. ‘이집트 박물관의 보물: 고대 이집트, 시간의 베일을 걷다’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관람객들. / 사진 = 김혜진 기자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라관이나 금장신구처럼 익숙한 고대 이집트의 유물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생활용품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투탕카멘의 세계를 다룬 공간에서는 소년 파라오의 통치와 1922년 그의 무덤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카라의 비밀에서는 고대 이집트 최초의 수도 멤피스의 핵심 묘역이었던 사카라에서 발굴된 장례 관련 유물과 최근 고고학적 발견을 소개했다.

고대 이집트가 다른 문명과 교류하며 발전해온 과정도 전시됐다. 고대 중국과 이집트의 유물을 나란히 배치해 서로 다른 문명이 같은 시대에 만들어낸 문화유산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의 대표 관광지를 둘러보는 대신 한낮의 시간을 박물관에서 보내는 일정은 색다른 여행 코스가 됐다.

홍콩 구룡반도 카이탁 스포츠 파크. 옛 카이탁 공항 부지를 재개발했다. / 사진 = 김혜진 기자

해가 기울 무렵에는 카이탁 스포츠 파크로 이동했다. 카이탁 스포츠 파크는 홍콩의 옛 카이탁 공항 부지에 조성된 대규모 스포츠·문화 복합시설이다.

1998년 첵랍콕 신공항이 개항하면서 운영을 마친 카이탁 공항은 도심과 바다 사이에 자리해 비행기가 낮은 고도로 도심을 가로질러 착륙하는 장면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5만석 규모의 카이탁 스타디움을 비롯해 스포츠 시설과 쇼핑·여가 공간이 들어섰다.

지난 6일 카이탁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 유벤투스의 경기를 찾았다. 경기장은 일찌감치 관중으로 가득 찼고, 곳곳에서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눈에 띄었다. 관중석에서는 유벤투스보다 첼시 유니폼이 유독 많이 보였다.

홍콩 구룡반도 카이탁 스포츠 파크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2026 HKFF(홍콩 풋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지난 6일 첼시FC와 유벤투스FC가 경기를 진행했다. / 사진 = 김혜진 기자

평소 첼시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낯선 홍콩에서 익숙한 파란색 유니폼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팬들 사이에는 홍콩 현지 관중뿐 아니라 해외에서 경기를 보기 위해 온 팬들도 섞여 있었다.

“Come on, 첼시!”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장 전체가 응원 열기로 가득 찼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함성과 응원가, 손에 든 맥주까지 더해지자 여행 중 쌓였던 긴장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관광지에서 만났던 홍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홍콩 사람들이 축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즐기는지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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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구룡반도 카이탁 스포츠 파크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2026 HKFF(홍콩 풋볼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지난 6일 첼시FC와 유벤투스FC가 경기를 진행했다. / 김혜진 기자

카이탁 스포츠 파크에서는 옛 공항의 흔적도 만날 수 있었다. 카이탁 MTR역에는 과거 공항의 사진과 자료가 전시돼 있고 주변에도 옛 공항을 떠올리게 하는 시설과 조형물이 배치돼 있다.

MTR 숭원토이역에서 카이탁 스타디움으로 이어지는 약 100m 길이의 ‘웨스트 브릿지’도 인상적이었다. 통로를 따라 걷자 천장에는 과거 카이탁 공항의 모습이 펼쳐졌다. 캐세이퍼시픽의 초기 항공기부터 1960년대 홍콩 상공을 날던 모습, 1980~90년대 세계 각지로 향하던 항공기의 모습까지 약 2분 분량의 영상이 이어졌다.

마치 공항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과거의 활주로를 따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의 사진과 영상이 현재의 스포츠 경기장으로 이어지면서 카이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줬다.

웨스트 브릿지는 카이탁 스포츠 파크의 창립 여행 파트너인 캐세이퍼시픽이 조성한 공간이다. 과거 카이탁 공항에서 실제로 비행기를 띄웠던 캐세이퍼시픽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1940년대 첫 항공기 ‘벳시(Betsy)’부터 1960~90년대 홍콩을 오가던 항공기의 모습이 차례로 등장한다.

홍콩 센트럴 일대. 개성 있는 칵테일 바들이 좁은 골목 사이사이 숨어있다. / 사진 = 김혜진 기자

밤이 되면 홍콩의 또 다른 문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숨어있는 개성 있는 칵테일 바를 찾아다니는 바 호핑 문화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개성 있는 바를 옮겨 다니며 각기 다른 칵테일과 분위기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홍콩의 바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음식의 맛을 술에 담아내는 시도였다. 익숙한 음식의 맛과 식재료를 칵테일에 접목해 지역의 식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포시즌스 호텔 홍콩의 칵테일 바 ‘아르고(ARGO)’의 대표 칵테일 메뉴. / 사진 = 김혜진 기자

포시즌스 호텔 홍콩의 칵테일 바 ‘아르고(ARGO)’가 대표적이다. 2021년 문을 연 아르고는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37위에 올랐다. 홍콩과 아시아의 식재료를 활용해 익숙한 맛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칵테일을 선보인다.

가장 흥미로웠던 메뉴는 ‘브로스 앤 소울(Broth & Soul)’이었다. 훠궈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로 그레이 구스 보드카에 핫팟 스파이스와 토마토를 더하고, 아몬티야도 셰리와 클리어드 토마토 주스를 활용해 맛을 완성한다. 메뉴판에는 소고기 육포를 곁들인 모습까지 그림으로 표현돼 있었다.

포시즌스 호텔 홍콩의 칵테일 바 ‘아르고(ARGO)’의 칵테일 메뉴들 / 사진 = 김혜진 기자

실제 잔 위에도 소고기 육포가 올라갔다. 한 모금 마시자 토마토의 풍미와 함께 훠궈를 떠올리게 하는 향신료의 맛이 느껴졌다. 익숙한 음식인 훠궈를 술 한 잔으로 옮겨놓은 듯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클래식 칵테일을 고객 취향에 맞춰 변주하는 메뉴도 있다. 아르고 마티니는 자체 진에 계절별 하이드로솔을 더해 향과 풍미를 달리한다.

포시즌스 호텔에서 나와 10여 분 걸어 찾아간 칵테일 바 고칸(Gokan)에서는 마파두부에 사용하는 양념을 활용한 칵테일을 선보이고 있다. 익숙한 마파두부의 맛을 술잔에서 만나는 경험이 묘했다.

영화에 나올 법한 작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아포테카리(Apothecary)에서는 말차 풍미의 칵테일부터 동남아시아를 연상시키는 풍미의 똠얌꿍맛 칵테일까지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칵테일 바 고칸(Gokan) / 사진 = 김혜진 기자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토마토소스와 칠리소스 같은 재료가 실제로 잔에 들어가는 모습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음식의 맛을 그대로 술에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미식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홍콩의 식문화가 바텐더의 손을 거쳐 한 잔의 칵테일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영화 ‘중경삼림’에는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대사가 나온다. 홍콩에서 만난 낭만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조금 길게 남겨두고 싶다. 만년쯤이면 좋겠다.

홍콩 = 김혜진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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