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책저책] 알고 떠나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는 진리의 징후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때로는 한 공간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그 공간이 특별한 곳이라면 다른 길을 걷다가도 오래 머물 텐데요. 여책저책이 만난 두 권의 책이 그렇습니다.
책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미술관을 무대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품을 해설하며 예술의 맥락을 복원하고요. 책 ‘길 위의 건축가들’은 스페인 북부 카미노를 따라 도시와 건축에 새겨진 기억과 상징을 해석합니다.
스페인 산 세바스티안 해변 / 사진 = 미다스북스
두 책 모두 단순한 여행 안내서를 넘어 장소가 탄생한 배경과 그 안에 담긴 역사·사회·철학적 의미를 짚어낸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작품과 건축을 감상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진 이유와 오늘의 삶에 건네는 질문까지 확장하죠.
결국 두 책 모두 공간을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공간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여행을 제안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이탈리아
이지안‧이정우 | 더블북
여행 가방 대신 도슨트의 해설을 들고 떠나는 이탈리아 미술관 여행은 어떨까. 북부 밀라노에서 남부 나폴리까지 도시마다 자리한 미술관을 따라가며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품을 만나는 여정이다.
이지안 도슨트와 이정우 에디터가 함께 쓴 책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미술의 흐름을 한 권에 정리한 실전형 가이드다.
책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로마 바티칸 박물관,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미술관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10개 미술관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각 미술관의 탄생 배경과 소장품의 의미를 함께 설명하는 것은 물론 ‘어떤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저자 이지안은 명화 속 심리를 읽는 미술치료사이자 현장 도슨트로 활동해왔고, 이정우는 현대미술 전문 에디터로 예술 콘텐츠를 기획·집필해왔다. 두 사람은 방송과 강연을 통해 쌓아온 해설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미술관 컬렉션 속에서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을 선별했다.
책은 미술관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나폴레옹의 야망을 반영한 브레라 미술관,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의 수집에서 비롯한 보르게세 미술관, 근현대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노베첸토 미술관 등 공간의 성격을 이해하면 작품도 더 선명하게 읽힌다고 설명한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도 새롭게 해석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신의 시선’에서 바라본 기획 의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적은 수의 작품만 남긴 배경,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 동시대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 등을 짚으며 명화의 이면을 조명한다. 젠틸레스키, 만테냐, 보티첼리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서사도 함께 소개한다.
또한 19세기 이후 이탈리아 근현대 미술의 흐름도 비중 있게 다룬다. 마키아이올리 화파, 조르조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 분할주의 화가들의 실험을 통해 이탈리아가 미술사의 주변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루치오 폰타나,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동시대 작가의 도전적 작업도 함께 조명한다.
두 저자는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예술가의 삶과 시대적 맥락, 사회적 논쟁까지 서사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미술관은 인증 사진을 남기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과 깊이 마주하는 사유의 장소로 재해석된다.
책은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는 동시에 책상 위에서 먼저 떠나는 예술 여행의 초대장 같다. 한 권을 손에 들면, 방대한 미술관도 더 이상 막막한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길 위의 건축가들
신만석 | 미다스북스
곡선의 바다와 빛의 건물, 기억의 도시를 따라 걷는 828km 여정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40여 년간 건축 설계와 감리 현장을 지켜온 건축가 신만석이 스페인 북부 카미노 순례길을 걸으며 기록한 인문 건축 기행서 ‘길 위의 건축가들’을 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저자는 도면을 내려놓고 배낭을 멘 채 바스크 지방의 엉다이와 이룬에서 출발해 산세바스티안, 빌바오, 게르니카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피스테라까지 이어지는 북부 카미노 828km를 걸었다.
그 길 위에서 도시와 건축, 사람과 시간이 겹쳐 쌓인 장소의 의미를 건축가의 시선으로 해석한다. 산세바스티안의 라 콘차 해변에서는 자연의 곡선과 도시 구조, 공학적 설계가 조화를 이루는 ‘머무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읽어낸다.
미라마르 궁전 / 사진 = 미다스북스
미라마르 궁전이 왕가의 별장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변모한 과정에서는 공간의 민주화를 짚는다. 밤이면 등대처럼 빛나는 쿠르살 회관은 ‘두 개의 바위’라는 지형적 은유를 현대 건축으로 번역한 사례로 분석한다.
빌바오에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통해 도시 재생의 상징을 살핀다. 저자는 “도시의 회복은 설계가 아니라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문장으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환기한다. 게르니카에서는 오히려 ‘부재의 건축’에 주목한다.
낮은 벤치와 비워둔 광장이 과장된 기념비보다 더 큰 울림을 남긴다고 말한다. ‘게르니카의 나무’와 의회의 축을 통해 건물보다 상징이 중심이 되는 도시 위계를 읽어낸다.
책은 전문서와 여행기 사이의 균형을 지향한다. ‘건축가의 시선’ 코너에서는 구겐하임의 외피 구조, 산세바스티안 구시가지의 밀도와 보행 리듬, 니마이어 건축의 곡선 미학 등을 분석한다.
산 세바스티안의 산 비센테 교회 / 사진 = 미다스북스
동시에 알베르게에서 나눈 핀초스 한 접시, 파사이아 만을 건너는 짧은 배편, 현지인과의 인사처럼 길 위의 소소한 장면도 담았다. 전문적이되 어렵지 않고, 인문적이되 무겁지 않은 이유다.
여정은 북부 카미노를 넘어 마드리드, 톨레도, 발렌시아, 바르셀로나로 확장한다. 톨레도 대성당에서 시간의 층위를 읽고, 발렌시아 과학예술도시에서 물과 빛이 만든 미래 건축을 살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곡선을 통해 “미완의 대성당이 주는 건축적 교훈”을 되짚는다.
산 세바스티안의 곡선해변 / 사진 = 미다스북스
부록에는 순례길 체크리스트, 루트 요약, 알베르게 정보, 건축 명소 가이드, 한국과 스페인 도시·건축 비교 연표, 유용한 스페인어 표현까지 수록했다. 읽고 나면 곧바로 길을 떠날 수 있는 실무형 안내서의 성격도 갖췄다.
책은 건축을 재료나 형식이 아닌 태도로 바라보게 한다. 건축은 인간이 쌓은 벽이 아니라 시간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라는 깨달음 그리고 좋은 건축은 누구의 발걸음도 환대하는 방식으로 완성한다는 메시지가 책 전반을 관통한다.
도시의 미학은 사람이 머무는 시간에서 탄생한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걷는 순간 또 하나의 건축가가 된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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